나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2017년 8월 28일)

divicom 2017. 8. 28. 08:31

누군가를 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가 하는 행동이나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대륙과 같아 그의 안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60여 년을 함께 산 사람으로서, 어머니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저녁에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둘째 아우와 제 생일이 임박하자 어제 어머니가 저희를 호텔 레스토랑으로 초대하셨습니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주고 받았습니다.

생각 깊은 아우는 제게 줄 꽃다발과 함께 

한여름에 두 딸을 낳느라 고생하신 어머니께 감사하는 꽃다발도 준비해왔습니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주는 축하 금일봉과 함께 당신이 아파트 마당 화분에서 키운 조선 호박도 한 덩이씩 주셨습니다.

여든여덟 해의 무게에 호박 두 개의 무게까지... 그 짐을 모두 들고 언덕 위의 호텔까지 걸어오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내색은 않고 속으로만 울었습니다.

생맥주 500 cc를 나눠 마신 덕에 세 모녀는 시종일관 웃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일요일 점심을 함께 했지만 어제 저녁은 그 어느 점심 때보다 즐거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희 어머니는 가수입니다.

음반을 내거나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돈을 번 적은 없지만 노래를 아주 잘하십니다.

지금도 일 주일에 네 번이나 노래교실에 가십니다.

가족 모임이 끝나고 나면 어머니는 으레 노래방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족들 중엔 어머니처럼 노래방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어머니의 제안은 늘 거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어제 저녁 어머니가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조금 더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노래방에 모시고 가고 싶었습니다.

호텔 직원에게 들으니 호텔엔 노래방이 없고 호텔 문밖 길 건너편에 노래방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침 그 길은 어머니가 댁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주 잘됐다고 생각하고 어머니에게 노래방에 가시자고 말씀드렸습니다.

함박웃음을 웃으며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노래방?" 하고 미소를 지으실 뿐 가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는 딸들을 배려해서 그러시는가 하고 재차 졸랐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안 가시겠다고 했습니다.


부른 배를 안고 호텔 마당을 걸어 내려가면서야 왜 안 가시려 하는지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든다섯까지만 해도 노래를 할 수 있었는데 노래가 안 나오더라고. 아버지 돌아가시고는 아예 안 나와.

이젠 노래 못해. 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봐, 뭔가가 없어져 버린 것 같아." 

어머니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심상하게 말씀하셨고, 저도 "그러실 거예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씀드렸지만 제 가슴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차올랐습니다.


이년 전 아버지를 잃고 한동안 나가지 않으시다 다시 노래교실에 다니시기에 이제 좀 살만 하신가 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지나가듯 하시던 말씀 같았나 봅니다.

"지금 아버지 옆으로 가면 제일 좋겠어. 그렇지만 어떡해? 죽어지지 않으면 살아가야 하잖아?" 


노래를 하지 못하면서 노래교실에 나가시는 어머니... 자식들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어머니가 기울인 그 모든 노력,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기 위해 기를 쓰고 살고 계신 어머니...


저는 어머니를 모릅니다.

어머니와 함께 한 육십 년어치 만큼 어머니를 모릅니다.

모르면서 사랑합니다. 이 사랑도 사랑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