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헬조선' 해결은 박정희식으로?(2016년 8월 2일)

divicom 2016. 8. 2. 07:26

이 정부는 나라를 앞으로 끌고 가는 대신 뒷걸음질치게 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단독으로 보도한 것을 보니 왜 그런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새마을운동'을 강조하고, 경제개발 이데올로기를 옹호한다는 건지, 그것이 어떻게 세대 간의 경험 공유에 도움이 된다는 건지, 참으로 한심합니다. 아래에 조형국 기자의 기사를 옮겨둡니다.



'헬조선' 돌파구가 박정희식 신상필벌? 해도 너무한 대통령 비서실 용역보고서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빈곤을 퇴치하고 후진국을 발전시킬 새 모델을 만드신 이론과 지도력을 겸비하신 시대의 영웅이라고 확신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위인전기에나 나올 법한 찬양 일색의 문구들은 880만원짜리 청와대 연구 용역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1970~1980년대 독재 정권의 중앙집권식 경제 개발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새마을 운동의 성과를 과대 포장하는 내용의 용역보고서를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발주·채택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대통령비서실이 공개한 ‘대한민국 경제발전 경험의 세대간 공유연구’ 보고서는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헬(hell)에 조선(朝鮮)을 붙인 합성어)’의 돌파구로 새마을 운동과 신상필벌의 리더십, 강한 컨트롤타워 등을 제안했다. 해당 연구 용역은 지난해 9월 열린 ‘한국 선진화 포럼 창립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발표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선진화포럼은 지난해 11월 발표내용을 정리해 보고서의 형태로 청와대 경제수석실에 제출했다.

보고서는 개발독재 시기의 경제발전 경험을 공유하면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부정적 인식을 돌파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세대 간 경험과 정보의 공유가 미흡하고, 차세대는 한국 경제발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있다”며 “본 연구는 한국 경제발전 경험을 공유해 한국의 경제적 성공에 대한 이해도·자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발전 경험이 전달돼 차세대가 올바른 경제관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이들이 세대 간 이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내놓은 경제발전 경험은 새마을 운동이었다. 보고서는 “새마을 운동으로 경쟁이 촉진되고 성과가 향상되고 시장의 차별화 기능이 저절로 우리 모두의 의식 속에 각인되면서 경제 시장화가 급속도로 진전돼 전대미문의 경제적 도약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기술했다.

이들은 과거 고도성장을 이끈 요인들이 현 세대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며 “신상필벌의 원칙을 세운 리더십을 확립해야한다”고 주문했다. 또 “평등의 원칙보다는 경쟁을 통해 확실한 보상하고 잘못하는 것은 과감히 정리하는 보상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전반적인 국정 계획 뿐만 아니라 실행을 유기적으로 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강화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일방적인 개발독재 옹호도 이어졌다. 보고서는 “박정희 대통령이야 말로 차별화 리더십의 전형이며 새마을 운동이야 말로 차별화 리더십의 생생한 시현과정”이라며 “빈곤 탈출, 효율적 성장, 신속한 정책결정을 위해 해방 이후 헌법을 여섯 번이나 바꾸고 정부 조직도 필요에 따라선 정권 특성에 맞춰 바꿨다”고 기술했다. 개발독재도 “정부 일방적 정책발표가 아닌 여론 수렴과 참여, 절차의 개방과 투명성으로 정책집행 효과성을 높였다”고 포장됐다.

청와대가 발주·채택한 용역보고서에 어울리지 않게 비문이나 오탈자도 여러 군데서 보인다.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대안을 최적의 대안을 도출하고, 전략의 우선순위를 설정을 해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집행해 냈기 때문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거나 “시장은 경제적 노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함으로써, 즉 흥하고자 노력하여 성과를 내는 이웃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기는 경제적 불평등을 무기로 모두를 흥하는 이웃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게 만드는 동기부여장치”라는 문장은 한 두번 읽어선 이해가 쉽지 않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소득결정요인에 기존 생산요소의 투입, 기술진보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을 효과적으로 결합이 되고 생산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추동력을 발휘해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좋은 수단이었다”, “최근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한국의 주요 수출제품들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산업육성을 위한 정책개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도 정부 정책 용역보고서에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고서에서 찬양한 과거 관치경제 경험이 과연 지금도 유효할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조선업 구조조정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현 정부의 모습은 우리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관치경제 폐해의 산 증거일 뿐”이라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헬조선의 청년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박정희 정권으로 대표되는 과거 경제 개발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안된 탓이 아니라 극심한 양극화와 민생고에 있다”며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책 보고서에 국민 세금을 쓴 것이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실 왜곡으로 정권 치적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현 정부의 행태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