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순천과 속리산(2016년 5월 29일)

divicom 2016. 5. 30. 12:33

오늘 tbs '즐거운 산책(FM95.1MHz)'에서는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고, 오세영 씨의 만화 <부자의 그림일기>를 

읽었습니다. 지난 5월 5일 돌아가신 오세영 화백, 그분의 만화, 꼭 한 번 보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영어 특강을 하러 오랜만에 전남 순천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속리산과, 양평의 아버지 유택에 들렀습니다. 순천에 간 건 38년 만입니다. 기자초년병 시절, 5.16민족상 사회부문상을 받은 외국인 선교사를 인터뷰하러 

순천에 간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서울역에서 출발했는데 해질녘이 되이 순천에 도착했던 생각이 납니다.


십년이면 변한다는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했을 텐데, 요즘 '변화'는 늘 '악화'를 뜻하는데, 놀랍게도 순천은 더 아름답고 젊어져 있었습니다. 자동차로 여섯 시간 걸려 도착한 '생태도시 순천'...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푸르렀습니다. 

38년 동안 자랐을 나무들은 도시 전체를 초록바다로 만들었고, 길이나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의 비율이 적당해 좋았습니다. 시내의 나무들 덕인지 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 덕택인지 공기도 서울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고층건물이 별로 없으니 눈을 들면 하늘이 쉽게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밝고 친절했습니다. 순천도 신도시 쪽은 좀 다르다는데 저는 운좋게 구도시 쪽에 머물러 좋은 것만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제 숙소는 순천대학교의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적당한 크기의 시설은 청결하고, 창밖의 새 소리는 아침부터 청아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버릇 덕에 새벽 공기를 마시며 선암사에 들렀습니다. 백제 성왕 때(527년) 지었다는 절집과 절집 사이의 공간은 오랜 시간 해탈을 구해 온 도량답게 엄숙하고 아름답지만 권위적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천태종 사찰 특유의 분위기일지 모릅니다. 저희 집 바로 뒤의 음전한 절 백련사도 품위 있으나 고졸한 분위기가 일품이거든요. 


선암사의 향기 속에 잠시 머물다 내려오는 길엔 야생차체험관에 들렀습니다. 꽃과 집이 부채와 그림 같았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사신다는 아주머니가 내려주시는 차를 마시며 미숫가루 다식을 먹었습니다. 차도 다식도 맛이 좋았지만 그분과의 대화가 더 맛있었습니다. 체험관에서 직원으로 일하신 지 5년 쯤 되었다는 그분, 결례가 될까 하여 

성함을 묻진 못했지만 병환 중이라는 그분의 남편이 꼭 쾌차하시길 빌었습니다. 절 아래 동네(사하촌:寺下村)는 늘 절을 닮기 마련입니다. 식당들도 절집마냥 조용히 아름다운 게 병풍처럼 둘러 선 조계산과 잘 어울렸습니다. 음식은 단출했으나 간이 맞아 속이 편했습니다.


순천을 떠나서는 속리산으로 갔습니다. 전에는 자주 다녔지만 한 십 년 가보지 못한지라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결론은 산은 그대로이나 사람들은 변했다는 것입니다. 휴가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문 닫은 숙박업소가 많았고, 네온사인과 호객하는 목소리는 늘었으나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 중엔 속리산에서 난 재료가 드물었습니다. 제가 늘 들르던 호텔의 방값은 전보다 오히려 조금 줄었는데 방으로 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보수를 하지 않은 시설은 호텔이라 부르기도 민망했습니다. 창문 밖 속리산의 푸른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순천대의 게스트 하우스가 그리웠습니다. 도대체 속리산 법주사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슬프고 궁금했습니다.


속리산은 가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산을 빙빙 도는 길을 한참 달려야만 닿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곳에 가면 속세를 떠나 '속리(俗離)'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속리산 법주사는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곳입니다. 신라 진흥왕 때(553년)에 지어졌다는 절 마당에는 두 그루의 커다란 보리수가 있는데, 잎과 줄기가 하나인 나무의 그늘에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말 그대로 '속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해 뜬 후라 그런지 등산복 차림의 큰 목소리들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옷은 사람들의 언행에 큰 영향을 줍니다. 등산복은 등산할 때만 입으면 좋겠습니다.


전에는 속리산에 가는 즐거움이 서너 가지쯤 되었습니다. 산을 보고, 정이품송을 보고, 절을 보고, 사하촌 식당에서 나물과 버섯이 가득한 식사를 즐기는 것이었지요. 그렇지만 이번엔 산과 정이품송과 절만 보고 왔습니다. 밥상에 

나물과 버섯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어쩌면 가고 오기 힘들어 속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줄고, 그래서 식당과 숙박업소들의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는 건지 모릅니다. 재료값을 줄이기 위해 속리산 특산물을 밥상에서 뺐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속리산이 팔아야 할 것은 '속리'입니다. 구불구불 가기 힘든 길을 달려 '속리'하러 간 외지인들에게 도시에서 늘 먹던 밥상을 내밀면 그 길을 달려가는 사람의 수가 점점 더 줄어들 겁니다. 


아래에 '즐거운 산책'의 제 칼럼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결혼'을 옮겨둡니다. 오늘 들려드린 노래 명단은 tbs 홈페이지(tbs.seoul.kr) '즐거운 산책' 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혼


단골 카페의 직원이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웃는 얼굴입니다.

내년 이맘때에도 5년 후, 십년 후에도 여전하기를 바랍니다.

 

결혼은 생활을 바꿔 사람까지 바꿉니다.

남자는 가장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해야 하고

여자는 주부로서 살림을 총괄합니다.

전업 주부 노릇이 표 나지 않는 노동과의 싸움이라면

맞벌이 주부의 나날은 시간과의 싸움이지요.

 

전업 주부는 거의 항상 집과 가족을 생각해야 하지만

맞벌이 주부는 출근하면 집을 잊어야 하고

집에 오면 회사를 잊어야 합니다.

전업 주부도 맞벌이 주부도 쉽지가 않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들이 아내를 돕는 이유입니다.

 

결혼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혼의 효과는 비슷합니다.

잘하면 원래의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잘못하면 원래의 자신만도 못한 사람이 되는 거지요.

자신보다 나은 반쪽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부디 자신보다 나은 반쪽을 만났기를,

결혼 덕에 나은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