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박원순과 안철수 (2009년 6월 24일)

divicom 2009. 10. 31. 11:30

원래는 물이나 법 얘기를 하려 했습니다. 총리는 안 한다고 하고 경기도지사는 시작되었다고 하는 대운하사업이나, 광우병 관련 보도를 문제 삼아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을 기소하고, 만 명이 넘는 시국선언 교사들을 ‘엄벌’에 처하는데 쓰이는 법이란 걸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정치적 얘기를 도통 하지 않던 시민운동가가 “권위적이며 편향적이며 갈등 유발적인” 현 정부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다보니 일주일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안철수 카이스트(KAIST) 교수가 생각났습니다.

 

-두 천재의 웃음-

 

안 교수는 문화방송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자신의 “비효율적”인 삶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의사에서 컴퓨터 백신개발자로 진로를 바꿔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인 ‘안철수연구소’를 세워 운영하다가 미국에 유학, 경영학석사(MBA)를 따고 돌아와 카이스트의 석좌교수가 되었으니 한 우물을 파는 “효율적” 삶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20대에 의사로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밤잠을 줄여 컴퓨터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얘기, 바이러스와 싸우는데 열중해 가족에게 군대에 간다고 말하는 걸 잊고 입대한 얘기, 천만 불을 줄 테니 연구소를 넘기라는 외국 기업의 제안을 받았으나 한국 백신 사업과 직원들을 지키기 위해 거절한 얘기.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겨 젊은이들의 패기를 꺾고 한번 실패한 사람에게 패자부활전을 허용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시종일관 아이 같은 웃음을 웃던 안 교수가 그 얘기를 할 때는 심각한 얼굴이 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안 교수와 박원순 이사는 종류가 다른 천재들이지만 두 사람의 트레이드마크인 사람 좋은 웃음은 참 닮았습니다. 박 이사의 바보스런 웃음을 보면 저런 사람이 어떻게 서슬 퍼런 197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다 학교에서 쫓겨났을까 궁금합니다. 다른 대학에 입학하여 사학도로 졸업한 후 런던 정경대(LSE)에서 국제법으로 디플로마를 따고 하버드 법대의 객원연구원을 지낸 다음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니, 시민운동에 투신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부자변호사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1994년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걸고 ‘참여연대’를 만들었고, 그 단체가 자리를 잡은 후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쓰기 운동”을 시작하여 ‘아름다운 재단’을 출범시켰습니다. 2006년엔 “시민에 의한 독립적인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희망제작소를 만들었고 만해상과 막사이사이상(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두 상의 부상으로 받은 7천여 만 원은 전액 세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런 박 이사가 ‘위클리 경향’ 최신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현 정부가 “통 크게 결단하고 폭넓게 수용”하지 않으면 파국이 올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시민단체와 관계를 맺는 기업의 임원들까지 조사하고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바람에 많은 단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민간사찰을 지휘하는 “사령부”가 있다고 했습니다. 국정원은 박 이사가 “근거 없는 주장으로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박 이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근거 없는 주장”으로 남의 명예를 훼손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 만큼 국정원의 법적 대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 같은 법과 정치-

 

좋은 정치는 좋은 바퀴와 같아 소리 없이 세상을 나아가게 하지만, 나쁜 정치는 세상을 악화시켜 보편적 삶의 개선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까지 정치적 행위를 하게 합니다. 정치의 팽배는 사회 각 분야에서 발휘되어야 할 천재(天才)의 낭비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천재(天災)에 버금가는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정치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고 법의 적용 또한 그래야 합니다. 정치(政治)와 법(法) 속에 물 “水”가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물의 길과 질을 바꾸는 운하사업 대신 물처럼 자연스런 법과 정치를 보고 싶습니다. 안 교수와 박 이사의 바보 같은 웃음을 언제까지나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