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존경과 두려움 (2009년 6월 13일)

divicom 2009. 10. 31. 11:27

 

이 경장, 지난 금요일엔 미안했어요. 맞아요, 이 경장과 동료들은 다만 직무를 수행 중이었고, 효자동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으로 가는 모든 골목에 정복경찰을 배치해 통행을 막은 건 이 경장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이 경장이 성난 중년 앞에서 당황한 건 당연했지요. “어디 가십니까? 영결식 초청장을 보여주세요. 초청장이 없으면 못 갑니다” 했을 뿐인데 그 여성은 몹시 화를 냈으니까요.

 

그건 바로 그 세 문장 때문이었어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정부종합청사에서 세종문화회관을 향해 가다 들은 유사한 문장을 상기시켰거든요. “어디 가요? 오페라 티켓 있어요? 티켓 없으면 돌아가요.” 나중에야 그날 저녁 노 대통령이 세종문화회관에 오페라공연을 보러 올 거라는 얘길 들었었지요. 이제 알겠지요? 이 경장에게 화를 낸 건 근 20년 만에 ‘공권력’이 보인 무례함 때문이라는 걸?

 

-막힌 길은 군중을 만들어-

 

골목입구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대로변에서 다시 전경들에게 저지당했고,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으로 부푸는 풍선이 되어 이리저리 밀리다 군중이 되었습니다. 군중은 온통 ‘공사중’인 거리를 빼곡히 채운 채 느리게 흘렀습니다. 걷기는커녕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습니다. 밀리다보니 서울광장, 발 딛을 틈도 없었습니다. 노제를 먼발치에서라도 보려면 서울프라자 호텔 쪽으로 가야 했지만 덕수궁과 호텔 사이의 너른 길도 사람 밭이었습니다. 그 밭의 끝을 찾아 서울역 쪽으로 걷다가 빙 돌아 호텔에 이르렀을 때는 무수한 사람들의 땀내가 내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인파 속 뜨거운 햇살 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만장을 들고 서있는 사람들, 노란 종이 모자 한 장을 쓰고 햇빛 소나기를 맞는 사람들이 놀랍고 존경스러웠습니다.

 

‘특1급’ 호텔인 프라자호텔은 기차역 대합실 같았습니다. 노제에 온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는 로비와 커피숍, 붐비는 1층 화장실은 영락없는 고속도로 휴게소였습니다. 골목을 막는 정부의 방식대로라면 투숙객 아닌 사람의 출입을 막아야겠지만 호텔 출입은 자유로웠습니다. 끝없는 이용객들이 화장실을 더럽힐세라 잠시도 쉬지 않고 걸레질을 하는 청소담당 아주머니도 햇빛아래 태연한 시민들만큼 존경스러웠습니다. 호텔 커피숍의 커피 한 잔은 9,500원, 부가세와 봉사료가 추가되면 11,495원. 저 같은 사람에겐 큰돈이지만 호텔 측의 수고를 생각하면 아깝지 않았습니다.

 

-존경과 두려움은 반비례-

 

이 경장, 다시 경찰버스들이 서울광장을 에워쌌다고 합니다. 텅 빈 초록 잔디밭을 버스 띠로 감아두는 게 얼마나 이상한지 가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 조처의 뿌리는 걱정 혹은 두려움이지만 그건 대나무 만장이 “시위 도구화”할까봐 PVC소재로 교체하는 것만큼이나 우습습니다. 무기를 만드는 건 소재가 아니고 마음입니다. 해칠 마음만 있으면 연필 한 자루도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분명한 건 걱정과 두려움이 많으면 존경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두려움은 녹내장처럼 시야를 좁게 만들어 사람을 위축시키고 판단을 그르칩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미국 최초의 3선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뿐이다”라고 했을 겁니다.

 

그날 말싸움을 하고 돌아서며 이 경장의 입장을 생각했습니다. 상대의 주장을 경청한다면 싸움도 대화입니다. 이 경장, 동료들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거든 전해주십시오. 무엇보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마음껏 울게 해야 한다는 것, 마음껏 흐르지 못한 눈물은 어떤 무기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아무리 길을 막아도 가려는 발길을 막을 수는 없으며 아무리 그리운 과거라도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얘기해주십시오. 이 경장, 언젠가 활짝 열린 서울광장의 초록 마당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건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