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플루토, 코스모스, 그리고 여름 휴가(2015년 7월 23일)

divicom 2015. 7. 23. 10:57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별의 주민이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고, 별을 다만 멀리 보이는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이 별에서 살고 있으며, 이 우주엔 이 별과 같은 천체가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그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과 생전 하늘을 보지 않는 사람의 삶은 크게 다를 겁니다. 


그런 면에서 김수종 선배와 같이 '별 보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닙니다. 마침 김 선배가 

자유칼럼에 제가 좋아하는 '명왕성(Pluto)'에 대해 쓰셨기에 옮겨둡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분들, 우주로 떠나보세요. 김 선배의 글에 나오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 바로 떠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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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소식

2015.07.21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무리를 본 적이 언제입니까. 오늘은 하늘 끝 아득한 곳에 떨어져 있는 별에서 전해온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화성 운하 존재설’을 주장해서 유명해졌던 미국의 사업가이자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 1855~1916)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조선이 1882년 미국과 수호조약을 체결하고 1883년 최초의 미국 공사가 부임해오자, 고종은 그해 7월 민영익 홍영식 등 11명으로 구성된 견미사절단을 워싱턴으로 보냅니다. 사절단 일행의 고문이 되어 미국으로 안내한 사람이 당시 일본에 머물러 활동하던 로웰이었습니다. 

고종은 로웰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그를 조선으로 초청하였습니다. 호기심 많고 문학적 감각이 뛰어난 로웰은 두 달간 조선을 여행하고 나서 ‘조용한 아침의 땅-조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로웰 천문대에 소장 중이던 이 책을 발견해서 국내에 소개한 이가 천문학자 고 조경철 박사였습니다. 조선 말기의 풍경과 한국인의 성정을 예리하게 관찰한 저서로 평가 받고 있는 책입니다.

로웰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후 본격적인 천문학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1894년 밤하늘의 별이 가장 선명히 보이는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에 로웰 천문대를 세웠습니다. 로웰은 이 천문대를 세운 후 태양계의 가장 바깥쪽 행성으로 알려졌던 해왕성 밖에 또 하나의 행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아쉽게도 로웰은 이 미지의 ‘행성X’를 찾지 못하고 191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로웰천문대는 태양계 외곽에서 ‘행성X'를 찾아내어 천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1929년 로웰 천문대는 23세의 청년을 연구원으로 채용했습니다. 그는 캔사스 농촌 출신으로 대학도 못 다녀서 천문학자라기보다는 아마추어 별 관측자나 다름없었습니다. 스무 살 때부터 스스로 망원경을 만들어 별을 관측하던 이 청년은 화성과 목성을 스케치한 그림과 함께 로웰 천문대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이 그림을 인상 깊게 본 로웰 천문대는 그를 채용했습니다. 

이 청년이 로웰이 찾던 '행성X', 즉 명왕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ough:1906~1997)입니다. 톰보는 로웰 천문대에 들어간 지 1년 만인 1930년 2월 대발견의 행운을 잡았습니다. 그때까지 수성에서 해왕성까지 태양계의 8개 행성을 발견한 것은 유럽의 천문학자들이었기 때문에 이 발견에 미국 천문학계는 흥분했습니다. 톰보는 행성를 발견한 한참 후인 1936년과 1938년에야 고향 캔사스 대학에서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새 행성 발견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에서 이 행성에 붙일 이름 후보 1,000여 개가 답지했습니다. 그중엔 영국 옥스퍼드에 사는 11세의 소녀 베네시아 버니가 보내온 'PLUTO''(플루토)란 이름도 있었습니다. 고대 신화의 재미에 빠져 있던 소녀 버니는 로마 신화에서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신의 이름에 착안했던 것입니다. 천문대 창설자 로웰의 부인인 콘스탄스는 남편 이름이나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를 제의했으나 천문대는 투표에 의해 PLUTO를 행성X의 공식 명칭으로 채택했습니다. 첫 두 글자가 퍼시벌 로웰의 이니셜 PL과 부합한 사실도 큰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명왕성(冥王星)이란 동양식 이름도 정말 PLUTO에 부합되는 듯합니다. 아득하고 어두운 태양계 밖의 우주공간에 떠 있는 행성에 어둠과 저승이란 뜻을 가진 ‘冥’(명)자를 갖다 붙인 것은 일본의 수필가이자 천문학자 노지리 호에이(野尻抱影: 1885~1977)였습니다. 

11세 소녀의 아이디어로 채택된 'PLUTO'란 말은 그 후 우라늄 연소로 새로 생긴 물질의 원소명 플루토늄(Plutonium)을 파생했고, 월트디즈니의 강아지 캐릭터의 이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명왕성은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자리 잡은 듯했으나 그 크기와 질량이 작은 탓에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이 행성의 정의를 새로 규정하면서 왜소행성으로 강등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밤하늘 어디쯤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그 명왕성이 지난 14일 이후 아주 또렷한 모습으로 지구 시민의 뇌리와 마음속을 점령했습니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탐사로봇 뉴호라이즌스가 명왕성 지표면 1만 2,500 킬로미터 상공을 근접통과하면서 이 얼음 왕국의 모습을 생생히 지구에 보내온 것입니다.

뉴호라이즌스가 명왕성에서 보내온 이 행성의 이미지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인간의 지식과 기술에 대한 놀라움과 더불어 우주에 대한 외경(畏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00여 년 전 나무 비행기를 겨우 공중에 날리기 시작했던 인간이 그동안 발전시킨 우주탐험 기술이 새삼 놀랍고, 시간과 공간을 별개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일상에서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우주적 시공개념에 당혹과 외경을 느끼게 됩니다. 

2006년 1월 지구를 떠난 뉴호라이즌스는 9년 6개월이 걸려 지난 7월14일 명왕성 상공 1만2,500킬로미터를 근접 통과한 후 외행성계로 향했습니다. 10년 전에 제작한 이 우주선을 정확하게 체크하고 예정된 시간에 정확하게 지구에 정보를 보내오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롭습니다. 

우주 공간에서 거리의 단위는 빛의 속도로 잴 수밖에 없습니다. 빛은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달립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는 1억5,000만 킬로미터로 햇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8분이 걸립니다. 태양에서 명왕성까지 거리는 명왕성의 공전에 따라 큰 폭으로 변하는데 평균 39억5,000만 킬로미터이니 햇빛이 도달하는데 무려 5시간30분이 걸립니다. 뉴호라이즌스가 사진 한 장을 보내면 5시간22분 후에 지구에 도착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까마득히 먼 명왕성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며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광대무변한 우주의 한 점 티끌에 불과합니다.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계에는 1,000억 개의 별이 있고, 그런 은하계가 1,000억 개나 존재한다고 천문학자들은 말합니다. 여기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지구 같은 행성은 별 축에도 못 낀다고 합니다. 그저 티끌 같은 존재이지만, 생명체와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지구는 경이로운 티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왕성의 모습을 보면서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의 첫 부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주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The cosmos is all that is or ever was or ever will be.)---인류는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 사이 어딘가에 길을 잃고 있는 하나의 점과도 같은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모든 인간 관심사는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하기는커녕 지극히 하찮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인류는 아직 젊고, 호기심 많으며, 용감하고 장래성이 있어 보인다. 지난 수천 년간 우주와 지구에 대한 인류의 새로운 발견은 놀라울 정도였으며 이는 인간이 경이로울 정도로 진화했고, 안다는 것은 기쁨이며, 지식은 생존의 선행조건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인류의 미래는 아침 하늘에 티끌처럼 우리가 떠 있는 이 우주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에 달려 있다.” 

칼 세이건의 글을 읽으면 경이롭고 즐겁습니다. 밥이 나오고 돈 벌 궁리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괜히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싶어집니다. 

이제 인류문명은 태양계의 끝부분까지 탐사로봇을 보내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인류가 지구를 잘 간직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칼 세이건은 핵전쟁으로 지구가 파괴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류 종말이 올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칼 세이건은 인류가 지구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누가 대변해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적막한 얼음왕국 명왕성 소식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지구의 존재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