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교사'와 '스승'(2015년 5월 15일)

divicom 2015. 5. 15. 09:19

다시 스승의 날입니다. 이 날이 오면 언제나 제가 학교에 다닐 때 만났던 선생님들, 좋은 기억을 주신 선생님들과 나쁜 기억을 준 선생님들이 떠오릅니다. 그분들 덕에 스승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대학교 4학년 말에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사를 할까, 신문기자를 할까... 신문기자를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 교생실습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귀여웠지만 교무실의 공기 교사들 간의 위계와 행정의 냄새 가 불편했습니다. 가난한 학생들이 많아 종례시간마다 담임교사가 등록금 납부를 독려하는데,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몹시 괴로웠습니다. 물론 요즘은 특정 학교 빼고는 중학교 등록금이 없어졌으니 그런 장면도 사라졌겠지요.

 

또 하나 교사를 선택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가르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라고 가르쳐야 하는데, 제 머리 속에선 끊임없이 아니, 이것도 맞지만 저것도 맞아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으니까요.

 

사십 년이 되어가는 그때를 돌이켜보면 제가 교사가 되지 않은 건 잘한 일입니다. 교사가 되었다면 행정적인 일을 잘못해서 쩔쩔매고, 교과내용에 대한 회의로 잠을 못 이루고,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는 선배 교사들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그만두었을 테니까요. 게다가 저는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때 제게 꼭 교사를 하라고 하시던 교장선생님에겐 미안합니다. 당시 교생실습을 끝내기 전 여러 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생 대표로 수업을 하고 나서 그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하늘이 내린 교사라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으니까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다니는 동안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기억나는 분들은 몇 분 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저희 반 담임이셨던 김정례 선생님, 중학교 때 국어를 가르치셨던 김선영 선생님, 영어를 가르치셨던 엄철용 선생님, 대학교 때 만났던 김옥길 선생님...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분들이 얼마나 좋은 선생님이었던가를 떠올리며 감사합니다.

 

제 아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만난 선생님들도 기억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던 몇 분... 오늘 찾아오는 제자들이 많을 겁니다.

 

제가 만난 선생님이든 제 아이의 선생님들이든, 한국의 선생님이든 다른 나라 선생님이든, 좋은 선생님과 나쁜 선생님을 가르는 기준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학생을 사랑해서 교사가 되면 좋은 교사가 되지만, 교사라는 직업의 조건이 좋아 교사가 되면 그냥 직업인이 됩니다.

 

오늘 아침 국민일보에 이도경, 정부경 두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은 참스승은 사라지고 좋은 직장만 남았다.. 2015년 대한민국 교사 자화상입니다. 큰 제목 밑에는 외부선 안정적 직업선망교권 침해 사건 갈수록 증가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작년 4월 기준으로 487336명이 교사로서 2438개 학교의 273210개 학급, 6963655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교사는 안정적이며 급여도 높은 편이고 방학도 있는데다 선생님이란 명예까지 있어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직업이 되었지만, 교권 침해사건은 10년 전에 비해 2.5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기사는 교권 침해가 늘어난 이유로 학생들의 높아진 인권의식과 '하나만 낳아 곱게 기른' 부모들의 과잉보호, 입시 위주의 일그러진 교육풍토 등을 들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교사들에겐 책임이 없을까요?

 

지금 교단에 서 있는 교사들 중 몇 사람이나 아이들을 사랑해서 교사가 되었을까요?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교사는 그냥 직업이 아닙니다. 교사에 스승 가 들어가는 건 교사는 스승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487천 여 명의 교사들, 아니 교단을 거쳐 간 수많은 교사들 중 스승은 몇이나 될까요? 그 숫자를 보면 교권 침해의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교사가 그냥 직업이 아니고 스승이 되어야 하는 천직임을 자각하여 스승이 되는 교사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사는 게 바빠 스승을 찾아뵙지 못하던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뵙느라 길이 막히는, 그런 스승의 날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