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아베 총리의 압승(2014년 12월 18일)

divicom 2014. 12. 18. 13:16

세계 정세는 긴박하게 돌아가지만 이 나라는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주연하는 스캔들에 휩싸여 묵은 물 속에서 새해를 기다립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일요일 총선에서 압승했으니 그의 극우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행보는 더 빨라지겠지요. 


정치인들이 할 일을 하지 않으니 시민들이라도 각성해야 합니다. 마침 어제 자유칼럼에서 황경춘 선생님이 아베의 압승에 대해 쓰신 글을 보내 주었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깨어 계신 아흔'... 황경춘 선생님께 감사하며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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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압승이 주는 교훈

2014.12.17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部晉三)의 지난 일요일(14일) 총선 압승은, 그의 절대적 정치기반이 앞으로 4년 더 계속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큰 관심을 끕니다. 종전의 국회에서도 절대 다수의 탄탄한 세력을 가졌던 그는 4년 임기가 끝나는 2016년 12월까지 선거의 모험 없이 갈 수 있었습니다. 2018년까지의 시간이 왜 필요했을까요?

2006년 9월에 처음 총리직을 맡은 아베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별 치적을 남기지 못한 채 물러났습니다. 민주당 집권을 거쳐 그가 5년 3개월 만에 총리의 자리에 되돌아와 시작한 ‘아베노믹스’란 이름의 경제 정책은 처음에 일본 유권자를 현혹했습니다. 과감한 엔화(円貨) 완화 조치로 주가를 올리고 대기업의 환영을 받아 10년 이상 계속된 일본의 격기침체에 숨통이 뚫리는 듯하였습니다. 

그의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위해선, 지난 4월 8%로 인상한 소비세를 내년 10월 10%로 다시 인상하는 것이 절대 필요했습니다. 많은 경제 관료와 당 지도자들은 야당과 합의한 이 소비세 인상이 당연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아직 느끼지 못한 일반 유권자의 불평이 나오기 시작하고, 초기 한때 70%를 넘었던 아베 총리 인기가 가을에 40%대로 하락했습니다. 

그가 정치도박의 유혹을 받은 것이 이때였습니다. 2년의 시간은 있지만, 명년 10월에 소비세를 10%로 다시 올리면 유권자의 불평이 커질 것은 물론이고, 이를 이용하려는 야당의 세력 재편도 걱정이었습니다. 경제 회생도 필요하지만, 그에게는 옛날의 ‘강한 일본’에의 복귀라는 집념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야당과 일부 지식인의 끈질긴 반대를 무릅쓰고 ‘특정비밀보호법’을 작년 말에 통과시켰고, 헌법 개정이 쉽지 않자 ‘헌법 해석’이라는 기발한 수를 써 ‘집단적 자위권’의 근거도 만들었습니다. 영토를 넘겨보는 중국의 군비증강에 대처하기에는 2년은 너무 짧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아베 총리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베노믹스’ 결과가 나타나는 데 더 시간이 필요하고, 외교 안보 정책에 자기 철학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유권자의 신임이 필요했습니다. 야당이 지리멸렬하여 아직 전세를 가다듬지 못한 이때에 총리의 전권인 ‘해산권’이 아베를 유혹한 것입니다. 

이러한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아베의 등을 밀어 총선의 결심을 하게 한 사람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입니다. 아베의 총리 탄생에 공이 큰 재사(才士)인 그는 이번에도 아베를 강력하게 설득하여 해산만이 그의 인기 하락을 막을 수 있다고 밀어붙였습니다. 그의 정치도박에 아베가 동의하여, 이번의 기습 해산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해산에 어리둥절한 유권자의 투표율은 52.66%로 전후 최저였습니다.

이제 아베는 마음 놓고 4년 동안 그의 정치 철학인 ‘강한 일본’ 복귀를 위해 힘쓰게 되었습니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를 참배하고, 서구 우방국의 충고도 무시하고 역사를 재인식하려는 그에게, 이제 헌법 개정도 가능한 든든한 정치기반이 다시 생겼습니다. 정족수기 5석 줄어 475가 된 중의원에서 연립여당인 공명당을 합한 여당권은 해산 전보다 2석이 더 증가한 326석을 확보하였습니다.

그의 선거 승리 후 첫 조치가 내각의 전원 유임이었습니다. 이제 당내 파벌의 논공행상(論功行賞)에 관계없이 마음 놓고 앞으로의 4년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제1차 내각은  큰 치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런 뜻에서 2012년 12월에 시작한 그의 두 번째 총리직엔 더욱 힘을 쓰고 있습니다. ‘총리는 두 번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후 총리의 유훈을 받드는 아베의 각오가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쿄대학 총장을 역임한 정치학자 사사키 다케시(佐木毅) 씨는 선거 직전에 발행된 일본 최대 보수 월간 종합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서 ‘연명밖에 모르는 해산은 일본정치사의 화근이 된다’며 아베 총리의 ‘교만’을 경계하였습니다. 총리의 국회 해산권을 정략으로 쓰는 폐단을 비난하는 소리도 높습니다.

명년이면 수교 50년이 되는 한국과 일본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취임 후 한 번도 회담다운 회담을 가져보지 못 했습니다. 두 나라의 우방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까지 걱정하는 한일관계입니다.

동남아 안보와 두 나라 경제를 위해서도 지금 같은 한일관계는 서로의 이익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문서유출이나 대한항공 ‘땅콩’ 문제 등 비생산적인 사건에 시간을 빼앗기기에는 국제정세가 너무 급변하고 있습니다. 전향적 외교가 요구됩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