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과 월요일 저녁 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에 가서 육상경기를 보고 왔습니다. 일요일 저녁엔 관객이 조금 있었지만 월요일 저녁엔 너무 적어 앉아 있기가 미안했습니다. 이십 육년 년 전에 올림픽을 치른 나라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스포츠에 관심 있는 시민이 그렇게 적은데 왜 아시안게임을 유치했는지, 경기장과 주변의 시설과 운영은 또 어찌 그리 아마추어적인지 자꾸 한숨이 나왔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말 실수, 전광판에 잘못 나온 선수 이름... 실수는 계속되었습니다. 1위를 차지한 선수가 국기를 들고 트랙을 돌며 관중에게 인사할 수 있게 국기를 준비해 주는 정도의 배려도 없었습니다.
입장권을 예매하는 것도 어려워 한참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경기 당일 가서 보니 더욱 한심했습니다.선수들에게 제일 미안한 건 메달 수여식이 열릴 때 관객이 없어 거의 텅 비다시피한 경기장에서 메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다시는 국제대회를 유치하지 말기 바랍니다. 마침 한국일보의 임철순 논설고문이 자유칼럼에 인천 아시안게임 얘기를 쓰셨기에 여기 옮겨둡니다.
| | | | | 9월 19일 시작된 인천 아시안 게임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종료일인 10월 4일까지 모두가 최선을 다해 한국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기대합니다. 어차피 스포츠 거대국 중국을 뛰어넘을 수는 없으니 종합 2위를 지키는 것이 이번에도 한국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성적과 관계없이 이번 대회는 지적해야 할 문제점이 많아 보입니다. 대회 종료 후 정부와 인천시,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점을 추려내고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었는지 논의해 백서를 만들어 내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개최하는 국제 스포츠행사의 바람직한 방향을 잡고 잘못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개막식입니다. 대만과 중국의 언론이 폄하한 것처럼 사상 최악의 개막식이었다거나 ‘한국판 전국 운동회’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문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한류 스타들을 내세운 쇼 위주의 개막식은 전반적으로 철학이 부족하고 ‘45억 아시아인의 축제’에 걸맞은 행사라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중국 대륙에 가까운 곳에서 대륙을 향해 한류를 선전하는 데 치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종 성화주자로 탤런트 이영애를 내세운 것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하계 올림픽의 경우 스포츠 스타가 아닌 사람이 최종 성화주자로 나선 경우는 없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홍보도 서툴러 읽어보면 누군지 금세 알 수 있는 보도자료를 내는 바람에 최종 성화주자가 이영애라는 사실이 행사 전에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어떤 행사든 개막식과 폐막식은 수미상관(首尾相關)의 논리와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개막식의 문제점이 폐막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개막식 후 성화가 꺼지고 선수들에게 줄 도시락에서 식중독균이 발견되는가 하면 숙소에 방충망이 없거나 장애인 주차장을 귀빈용으로 이용하는 등 부실하고 미숙한 운영도 문제입니다.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잔치가 끝난 뒤 부각될 문제점입니다. 인천시는 아시안게임을 치르기 위해 2조5,000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문학경기장을 리모델링해 사용하라는 정부 권고를 듣지 않고 전체 예산의 19.6%인 4,900억 원을 들여 주경기장(인천 서구 연희동)을 신축했습니다. 주경기장 등 16개 경기장 신설에만 1조2,800억 원이 들어갔습니다. 예산 대비 채무비율(35.7%)이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 제일 높은 지자체가 이렇게 무리를 했으니 부작용이 없을 수 없습니다. 손익 계산을 해보니 이번 아시안게임은 2,673억원의 적자를 낼 전망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신축 경기장 중 주경기장과 문학박태환수영장을 제외한 6개 경기장은 연평균 51억여 원의 운영적자를 낼 것으로 분석됐다고 합니다. 대회 후 경기장 관리 및 운영에 드는 예산은 해마다 13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돼 인천시의 재정을 옥죄게 될 전망입니다.
인천시는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면서 ‘한국 제 3위의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과 수십조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고 홍보했지만, 실제는 그 반대로 혈세 낭비, 도시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 위축으로 이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국제 행사는 잘못되면 지역경제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 수요 예측을 정확히 하고 경기장 시설의 사후 활용방안을 철저히 수립하라는 충고와 지적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결과입니다.
부작용과 후유증이 불 보듯 뻔한데도 임기 중의 업적만 챙기는 지자체장들은 일단 일을 저지르고 정부에 돈을 대달라고 떼를 쓰곤 합니다. 1990년 이후 국내에서 열린 7차례 국제 스포츠대회 중 관광수입 증가에 기여한 대회는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과 2011년 대구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두 개뿐이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2016년까지 7차례 열기로 한 F1자동차 경주대회의 경우 전남도가 2006년 유치한 이후 지금까지 누적 적자만 1,700억 원이 넘습니다. 전남도의 재정자립도는 13.5%(2011년 기준)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이 적자를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세계 수영선수권대회 유치과정에서 공문서 위조 파문을 일으킨 광주시도 재정 자립도가 42%밖에 되지 않는데, 2015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세계 수영선수권대회를 치르고 나면 빚더미에 올라 앉을 공산이 큽니다.
일단 유치한 국제 행사가 잘못되면 나라 망신이니 정부가 도울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일을 저지르고 보는 행태가 지양돼야 합니다. 기왕에 유치한 대회가 한국 브랜드를 높이고 경제효과를 내게 하려면 인천 아시안게임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지자체가 국제 경기대회를 유치할 때 정부가 개입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자체장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빚은 남아 주민들을 괴롭히고 지자체 운영과 발전을 저해하게 됩니다. 언제까지 이런 걸 두고 보기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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