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홍순영 장관님 별세(2014년 5월 3일)

divicom 2014. 5. 3. 11:01

오늘 이른 아침 홍순영 장관님의 발인식이 열렸습니다. 어제 종일 앓지만 않았어도 아산병원에 가서 마지막 인사를 드렸을 텐데... 얼마나 죄송한지 모릅니다. 장관님은 제가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는 소수의 외교관 중 한 분입니다.

 

코리아타임스 정치부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1980년대 중반 홍순영 장관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홍 장관님은 외무부(지금의 외교통상부)의 제2차관보로 재직 중이셨습니다. 서슬 퍼런 5공화국 시절, 기자실과 공보실에 안전기획부(지금의 국가정보원)와 치안본부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들던 시절이라 눈치를 살피는 공무원들이 많았지만 홍 장관님은 언제나 당당하셨습니다.

 

홍 장관님에겐 여러 가지 일화가 따라다닙니다. 5공화국 시절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재직할 때 전임자가 추진했던 아·태정상회의가 실현성이 적다고 주장해 포기시키고, 1983년 버마의 아웅산묘소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을 때는 사건 초기부터 북한의 공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200111월 금강산에서 개최된 6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는 북한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해 남북 합의를 결렬시켰다가 통일부 장관에서 밀려나기도 하셨지요?

 

북방외교의 외무부 최고 실무책임자로 불가리아·폴란드 등과의 수교에 기여하시고, 주파키스탄, 주말레이시아, 주러시아, 주독일, 주중국 대사를 역임하셨으니, 장관님만큼 다양한 국가를 상대로 일한 외교관도 드물 겁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1998~2000)과 통일부 장관(2001~2002) 등을 지내셨는데, 외교장관 시절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을 서울로 초청해 함께 온천욕을 하며 외교를 펼쳐 온천 외교의 주인공으로 한·중 관계를 개선시키셨습니다.


공직을 떠난 후엔 대학에도 출강하셨다는데, 높은 분들을 멀리 하는 제 본성이 재회를 방해해 1986년 외무부 기자실을 떠난 후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으니 참으로 애통합니다. 백세까지 사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 겨우 77세에 별세하셨으니... 사는 것도 떠나는 것도 홍 장관님답다고 해야 할까요?

 

1984년인가 1985년인가 어느 날 당시 홍 차관보님의 방에서 나눴던 대화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신문사에서 새벽 2시까지 야근하고 집에 간다는 얘기를 들으시더니 무슨 회사가 그렇게 위험한 일을 시키느냐고 열을 내시며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지요. 제가 모든 기자가 다 그렇게 한다고 하자 그렇게 위험한 짓 하지 말라며 운을 시험하지 말라!(Don’t test your luck!)”고 목소리를 높이셨습니다. 그 격앙된 목소리에 담긴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가끔 홍 장관님과 그 시절을 생각하며 웃음짓곤 했는데 이렇게 총총히 떠나시니 얼마나 안타깝고 서운한지... 더구나 이어지는 재난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장관님 같은 어른이 필요할 때 떠나시니, 이 나라의 불운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주시고 '어른다운' 어른이 어떤 사람인지 몸소 보여주신 홍 장관님... 늘 감사하며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