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그리운 법정스님(2014년 3월 11일)

divicom 2014. 3. 11. 10:53

2010년 오늘은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날입니다.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지만 가끔 스님이 그립습니다. 예전처럼 신문의 지면에서나마 스님의 얼굴을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은 많아도 존경할 사람이 드뭅니다. 목사는 많아도 존경할 목사가 드문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거친 세상, 불행한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왜 법정스님 같은 얼굴을 보기 힘든 걸까요? '중생이 괴로우니 내가 괴롭다'는 말은 낡은 책 속에나 있는 말일까요? 존재만으로 위안을 주시던 분, 법정스님을 생각하며 그 분이 남기신 글 한 조각 옮겨 둡니다. 스님의 책 '無所有(무소유)'에 실려 있는 '雪害木(설해목)'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책과 글의 원제 모두 한자로 되어 있습니다. 



雪害木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老僧) 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 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 주는 것이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을 들어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었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버리고 안 계신 한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노사의 상(像)이다.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게 되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아밧티이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殺人鬼) 앙굴리마알라를 귀의(歸依)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神通力)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慈悲)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 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