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블루 재스민 (2013년 10월 13일)

divicom 2013. 10. 13. 18:17

오랜만에 극장에 갔습니다. 의사로부터 제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김흥숙'을 구성하는 몸과 마음, 몸의 겉모습과 속모습, 감정과 그 감정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김흥숙이 있겠지요. 


바라보는 김흥숙은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김흥숙과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김흥숙, 세상에 적응하는 김흥숙 모두를 바라 봅니다. 바라보는 김흥숙이 살아가는 김흥숙을 위로하고 싶어할 때 그럴 때 찾는 곳이 극장입니다. 스크린 위에 투영되는 남들의 삶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김흥숙'이 조금 편해지기를 

바라는 것이겠지요.


이화대학 캠퍼스에 있는 극장 아트하우스 모모는 그럴 때 찾기 좋은 곳입니다. 가을답게 아름다운 캠퍼스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 극장에선 언제나 좋은 영화만을 상영하기 때문에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편한 시간대에 하는 영화를 보면 되니까요. 이 극장은 음식물의 반입을 금지하기 때문에 오징어 냄새나 팝콘 냄새, 과자봉지의 부스럭 소리 같은 것들의 방해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극장의 관객들은 영화가 다 끝나기도 전에 떠들며 일어나 나가는 다른 극장의 관객들과 다릅니다. 그들은 '엔딩 크레딧' 즉 '뒤에서 수고한 스태프'의 이름까지 다 본 후에 일어나 나갑니다. 


'블루 재스민(Blue Jasmine)'은 우디 앨런(Woody Allen)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여인들의 삶을 우디 앨런식 위트를 곁들여 보여줍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여러 번 웃지만 웃음은 짧고 여운은 깁니다. 영화를 본 후엔 캠퍼스의 나무 아래를 걸었습니다. 영화가 남긴 여운을 음미하는 데는 산책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요. 


지난 달인가 지지난 달인가 본 '길 위에서'가 아직도 상영 중인 게 놀라웠습니다. 비구니들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인데 꽤 인기가 있나 봅니다. 세속의 삶이 힘들어지니 절집 안팎이 더 궁금해진 건지도 모릅니다. 가을... 이 영화를 보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