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 세상, 저 세상 (2013년 9월 20일)

divicom 2013. 9. 25. 08:55

영안실 몇 번 다녀오니 9월이 끝나갑니다. 길고 독했던 더위의 영향 때문이었을까요? 여름 끝자락에서 

이승을 떠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망인이 저보다 어린 분들이니 영안실에 다녀올 때마다 며칠씩 아팠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죽고, 나이들수록 쇠잔해지는 몸과 마음을 지니고 사는 것은 적잖이 고통스럽습니다. 지난 달, 여든아홉 연세에 평생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해보신 저희 아버지는 가끔 당신의 몸을 가리키며 "네가 자꾸 나를 못 살게 굴면 내가 너를 아주 보내버리는 수가 있어"하고 웃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잘 늙는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할 줄 알고 둘의 균형을 맞추는 일, 무엇보다 유머를 유지하는 일임을 배웁니다.


노년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는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노인의 자살률은 연령에 비례해서 증가하니까요. 60대보다 70대의 자살률이 높고, 70대보다 80대의 자살률이 높은 거지요. 늙음이 수반하는 육체적 정신적 피폐, 외로움과 소외감 등을 생각하면 '너무 늙기 전'에 이곳을 떠나는 것이 '기품있게' 살아내는 방법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도록, 모두에게 잊혀진 삶,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 시간을 사는 노인들 중엔 일찍 떠난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런 분들을 보고 '괜히 말로만 저러지 사실은 오래 살고 싶은 거야'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늙어보지 않았으니 늙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겠지요. 물론 노인들 중에도 죽음을 몹시 두려워하며 죽지 않으려 하는 분들이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몇 년씩 의식을 잃고 병석에 누워 아직 이승에 머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엊그제 본 사람이 문득 저 세상 사람이 되는 일도 있습니다. 몸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 사람이 회갑도 못 되어 죽는가 하면, 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데 오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人命은 在天)'이라는 말이 있겠지요. 


영안실을 드나들며 느낀 것은 소위 '평균 수명'을 살고 떠난 분들의 빈소엔 슬픔과 웃음이 있으나 그 전에 떠난 분들의 빈소엔 슬픔뿐 웃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평균 수명'이란 '살 만큼 산 나이' '떠나도 좋은 나이'의 다른 말일지 모릅니다. 떠나는 이 스스로도 그렇고 남는 가족들도 그렇고 '평균 수명'을 살고 떠날 때,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이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더럽고 비열하여 가능하면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 남을 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하여 죽음의 시각을 늦춰 주길 바랍니다. 더구나 당신이 정의롭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부디 오래 이곳에 머물러 주십시오. 당신은 괴롭겠지만 이곳엔 당신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니까요. 어젯밤 추석 달을 보며, 내가 알았던 사람들,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들, 한때 이승에 동행했던 죽은 이들 모두의 안식을 빌었습니다. 이승에 남은 자들을 동정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