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쓴 글입니다. 새해 시작되고 두 달이 되어가지만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면 젊망을 부추기는 일들이 숱하게 일어납니다. 이럴 때일수록 '희망'을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희망을 걷다
신문의 상담란에 가슴 찡한 사연이 있습니다. 고치지 못할 병에 걸려 곧 죽게 된 사람이 파티를 열어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은데,그래도 되는 거냐고 묻습니다. 상담사는 그 파티를 ‘사별 파티’로 하지 말고 그간의 ‘삶을 축하하는 파티’로 하고, 감사의 글을 준비해서 그 자리에서 읽으면 어떠냐고 제안합니다.
저도 누군가의 아내라서 그런지 부인에게 보내는 유서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원순씨’는 인권변호사이며 시민운동가로 활동한 자신 때문에 부인이 여느 변호사 부인들처럼 여유롭게 살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어느 날 이 세상 인연이 다해 내 곁에 온다면 나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겠소. 그래서 우리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이생에서 다하지 못한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으면 하오”라고 희망합니다. 이생 다음 생이 있는지는 몰라도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듣는 아내는 행복할 것입니다.
‘모든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유서는 “우리는 함께 꿈꾸어 오던 깨끗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그 못다한 몫은 바로 이제 여러분들이 이뤄 줄 것임을 믿습니다”라는 희망으로 끝을 맺습니다.
원순씨는 참 희망이 많은 사람입니다. 서울시장이 된 뒤에도 원순씨에게선 ‘희망’이 떠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희망온돌 사업’을 벌이고 ‘희망마차’를 가동합니다. 원순씨가 시장 된 지 일 년을 정리하여 작년 10월에 내놓은 시정보고서의 제목도 ‘희망시정 1년, 성과와 과제’였습니다.
내친김에 최근에 출간된 원순씨의 책 <희망을 걷다>를 집어듭니다. 수염투성이 원순씨가 먹구름 낀 산을 배경으로 웃고 있습니다. 원순씨의 평발은 2011년 7월19일부터 9월5일까지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그를 이끌었고, 이 책은 그가 산중에서 매일 기록한 ‘희망일기’입니다.
책을 읽으니 그해 10월 원순씨가 원치 않던 ‘정치의 길’에 들어서게 된 건 백두대간 때문임을 알겠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주한 고통으로부터 결코 도피할 수가 없었다. 과거에 억지로 피해왔던 현실이 걸음걸음을 가로막았다. 마침내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했고, 현실은 운명을 바꾸었다. 49일 동안 나의 산행은 결국 나를 ‘정치의 길’로 이끌었다… 산에서의 긴 성찰이 없었다면 어찌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원순씨의 동행 김홍석씨의 글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홀로 가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준 원순씨…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가슴 깊이 공감하고, 남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 갈 수 있다는 것을 49일 동안 행동으로 가르쳐주었다.”
원순씨가 그 여름 빗속에 백두대간을 걸은 것이 고맙습니다. 그가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조용히 서울을 바꾸는 시장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저도 원순씨처럼 “깨끗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싶습니다. 원순씨는 백두대간을 걸었지만 저는 서울에서 걷겠습니다.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희망이 부축해 주겠지요. 그렇게 살다가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면 고마운 사람들을 불러 그간의 ‘삶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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