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결혼식 하객 노릇 (2009년 7월 10일)

divicom 2009. 12. 29. 19:04

주말이 다가오면 결혼식 하객 노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은 날 여러 곳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려면 경제적 부담도 부담이려니와 막힌 길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얼른 혼주와 눈을 맞춘 후 축의금을 내고 다음 예식장으로 가야 하는데 길게 늘어선 축하객들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신랑 측과 신부 측의 줄이 비슷하면 다행입니다. 한쪽 줄은 끝없이 이어지는데 한쪽은 텅 비어 있으면 보는 사람이 당혹스럽습니다.

자녀를 결혼시키는 부모들 중에 이런 불균형을 예상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사람들이 꽤 있나 봅니다. 자존심 때문인지 허세 때문인지, 더 큰 사기를 치기 위한 기초 닦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결혼식 하객을 돈으로 산다는 겁니다. 지난 주 한국일보의 독자투고를 보니 나이가 제법 든 사람들이 일당을 받고 신랑이나 신부의 아버지 친구 혹은 친척 노릇을 해준다고 합니다. 혼주들과 ‘아르바이트’할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회사도 있다고 합니다.

글을 투고한 ‘결혼식 하객 도우미’는 전에 갔던 결혼식에선 신부의 친척 노릇을 하고 사진까지 같이 찍었으며, 이번엔 신랑 아버지의 친구 노릇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결혼식은 강남에서 제법 유명한 예식장에서 치러졌는데 신랑 측에서 100명의 ‘짝퉁’ 하객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7만 원짜리 점심에 일당 1만 5천원.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약속 장소로 가니 ‘60세는 넘어 보이는’ 남자들이 이미 20명 넘게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도우미회사 직원이 축의금으로 낼 돈을 담은 봉투 2개씩을 나눠준 후 방명록에는 이름을 두 개씩 더 적으라고 했답니다. ‘의도가 수상해서’ 왜 더 적느냐고 물어보니 “방명록에 사람 이름이 많을수록 좋답니다.” 라고 아리송하게 대꾸하더랍니다.

마침내 결혼식이 시작하자 투고자는 궁금해졌답니다. “신랑은 잘 났고 색시는 곱다. 신랑 아버지도 풍채 좋고 돈도 있어 보인다. 부인도 참하다. 그런데도 짝퉁 하객 100명에 천만 원을 쓰면서 신부 측에 과시할 일이 무엇인지... 나 역시 때가 되면 아들딸이 시집 장가를 간다고 할 것이다. 그때 나는 친척에다 진짜로 축하해줄 하객 10명 안팎만 돼도 반가울 것 같다.” 옳은 말을 하던 투고자의 끝맺음은 의외입니다. “하기야 이렇게 부질없는 허세에 헛돈을 쓰더라도 행복하기만 하다면야 무슨 말을 할까.”

이 글을 쓴 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경험한 일을 글로 풀어가는 품을 보면 꽤 배운 사람인 듯하고, 1인당 7만 원이나 하는 식사를 제공하는 예식에 가짜 하객으로 뽑혀가는 것으로 볼 때 겉모습도 보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라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도 힘들고 일당으로 받는 1만 5천원으로 쌀을 사야 할 정도의 형편이라 옳고 그름을 따질 수가 없었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점심과 그 돈이 없어도 생존 내지 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사기행위가 분명한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죄의식으로 괴로워하기는커녕 ‘행복하기만 하다면’ 나쁜 짓도 괜찮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혼식은 두 가정이 각기 배출한 아들과 딸이 평생 동행을 약속하는 자리입니다. 그 여정은 모든 참석자가 축복만을 해주어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길고도 힘든 과정입니다. 그런 자리에 가짜 손님을 사다 앉혀 세(勢)를 과장하는 건 결혼이라는 약속의 신성함을 처음부터 부정하고, 여로에 오르며 먹구름을 부르는 행위이니, 그 신혼부부가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신랑 측에 하객이 너무 적게 올까봐 걱정이 된다면 미리 신부 측과 상의하여 양쪽 하객을 동수(同數)로 맞추면 좋겠지요. 50명이면 50명, 100명이면 100명씩만 초청하는 겁니다. 그러면 청첩을 못 받은 사람들이 서운해 할 거라고요? 아니요, 별로 그렇지 않을 겁니다. 요즘은 ‘모시는 말씀’보다 ‘인사의 말씀’이 박수를 받습니다. ‘제 아들(딸) 아무개가 아무개의 딸(아들)과 모월 모일에 결혼했으니 축복해주십시오.’라고 하는 인사말이지요.

하객의 수를 ‘진실로 축복해줄 사람’만으로 줄이면 축의금은 줄어들겠지만 결혼식은 오롯이 축복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신랑의 아버지 친구 노릇을 할 만큼 나이 든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복 많은 것 같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나이 들어가는 동료들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결혼식 하객 도우미’ 같은 건 하지 말아 주십시오. 남아 있는 시간은 지금까지 저질러온 잘못을 지우는 데 쓰기에도 부족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