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이 봄 개편을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저작권료 문제로 '오늘의 시' 코너는 하지 못하게 되었고, '책 이야기'도 같은 이유로 많이 줄었습니다. 대신에 '작은 역사로 보는 문화세상'과 '고전 읽기'라는 코너가 생겼고, 제 칼럼 '들여다보기'도 신설되었습니다. '즐거운 산책'은 tbs FM(95.1Mhz)에서 일요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방송하는데, 다음 주 일요일이면 꼭 일 년이 됩니다.
tbs는 주로 차 안에서 들으시는 분이 많지만 저처럼 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집에서 듣습니다. 방송 중간에 수시로 제공되는 교통사정을 듣다보면 어디론가 가고 있는 듯해서 방안에서 여행의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개편에 맞추어 홈페이지(www.tbs.seoul.kr의 '즐거운 산책')도 새롭게 단장했으니 한 번씩 방문해주시고 방송을 듣고 느끼신 점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아침 '들여다보기'에서는 '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 내용을 여기 적어둡니다. 아래의 내용과 방송된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것은 글과 말의 차이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노래'로는 박인희 씨가 부른 '봄이 오는 길'을 틀어드렸습니다. 노래의 가사처럼 봄은 신작로가 아닌 '조붓한' 길로 덜컹거리며 온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노래, 꼭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들여다보기' -- '물'
지난 금요일(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었습니다. 1993년 유엔총회에서 ‘깨끗한 물’, 수자원 보호를 위해 처음 지정했습니다. 물은 우리 몸의 70퍼센트 이상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으로, 2퍼센트가 부족하면 갈증이 나고, 20퍼센트가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빠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고마운 물이지만 무서운 것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마포에 살 때, 동네가 물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무릎까지 차는 흙탕물을 가르며 동네에서 제일 높은 6층 건물로 피난을 갔습니다. 물살이 얼마나 빠른지 어지러워 쓰러질 뻔했습니다.
세 살 어린 남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건너가서, 6층 창문으로, 물에 잠겨 지붕만 나온 우리 집을 보며 물의 무서움, 자연의 무서움을 처음 느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물이 무섭다는 생각보다 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바닥의 경사에 따라 천천히 흐르거나 빨리 흐르고, 영하에선 얼음이 되고 100도 넘는 온도에선 수증기가 되지만, 물은 물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본질을 바꾸지 않습니다.
물은, 무엇보다, 스스로 성내는 법이 없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엔 화기(火氣)가 충만합니다. 산불은 주로 건조한 봄에 나지만, 사람들은 사시사철 화를 냅니다. 누군가 쉽게 화를 낸다는 건 그 사람이 그만큼 불행하다는 뜻이겠지요. 누군가 화를 낼 땐 저 사람 속에 내가 모르는 불행이 있구나 생각하면서 잠시 침묵하면 어떨까요, 큰 호수처럼.
호수에 불덩이를 던져도 호수엔 불이 붙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호수가, 물이 되었으면, 그래서 화난 사람들이 찾아와 화를 식힐 수 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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