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8

그녀를 기리며 (2022년 12월 28일)

꽤 오래 직장생활을 했지만 일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월급은 적고 집도 없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는 제가 한 일의 결과가 성에 차지 않아 어두운 얼굴일 때가 많았습니다. 더 나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선 젊은 시절 제 고민 같은 것은 '사치'가 되고 일터에서 죽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생활을 위해 일하는 곳이 '생활 전선'이라고는 하지만 그 전선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다니... 세계 10위 권에 드는 경제력을 가진 국가는 이런 것일까요? 일터에서 죽은 사람들의 명단은 길고 길지만 지난 시월 SPC 계열사에서 숨진 스물셋 젊은이가 유독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그녀의 죽음이 2주 후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동행 2022.12.28 (1)

노년일기 147: 크리스마스날 (202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아침 부고를 받았습니다. 뜬금없이... '새로 태어나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울지마 톤즈'를 방영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처음 그 영화를 보던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 사람이 개인의 안락을 목표로 하는 대신 더 높은 뜻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려 노력할 때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가, 그의 선의와 선행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가 생각하니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태석 신부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결한 이름... 그분 덕에 말갛게 씻긴 눈을 닦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얀 눈은 사라지고 거뭇거뭇한 눈만 가로수 아래 쓰레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눈은 흰눈일 때 눈 대접을 받고 사람은 의식이 제..

나의 이야기 2022.12.25 (2)

일본 가는 한국인들 (2022년 12월 22일)

지난 달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일본이 밉다고 일본제 볼펜을 발로 밟고 유니클로를 사면 매국노라 욕하던 한국인들은 아니겠지요? 최근 일본정부는 평화헌법을 포기하고 국방 예산을 대폭 늘릴 계획을 발표해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와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부 국수주의자들은 일본의 '몰락'을 얘기한다고 합니다. 장담하건데 일본은 몰락하지 않습니다. 아니, 몰락할 수 없습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한국은 사라져도 일본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한국이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큼을 보여주는 현상이 많듯 일본이 몰락할 가능성이 적음을 보여주는 현상도 많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월간지 '문예춘추 文藝春秋'가 내년 ..

동행 2022.12.22 (2)

성냥팔이 소녀 (2022년 12월 20일)

이 나라가 천민 자본주의의 대로를 질주하는 동안 소위 '우리 것'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그중 가장 엉망이 된 건 우리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국 아나운서들까지 엉터리 우리말을 합니다. 그런 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꼰대질'하는 사람이나 '속좁은' 사람으로 비난받습니다. 그러니 제가 우리말을 사랑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우리말에 대해 배우고 우리말로 쓴 글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다 오랜만에 '성냥팔이 소녀'를 만났습니다. 담배 한 개비 물고 불붙이고 싶은 아침입니다. 우리말 산책 성냥팔이 소녀를 죽게 한 어른들의 무관심 엄민용 기자 요즘처럼 추운 날이면 생각나는 동화 하나가 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지은 ‘성냥팔이 소녀’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죽어간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

동행 2022.12.20 (1)

행정안전부의 문자 (2022년 12월 16일)

본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지만 요즘 들어 밤늦게까지 봐야 할 것이 있다거나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자정 넘어 잠자리에 드는 날이 많았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도 아니니 이튿날엔 7시나 8시에 일어나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가 자꾸 잠을 깨웠습니다. 천재지변이 난 것도 아니고 큰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엊그제 수요일엔 아침 6시 1분에 문자가 왔습니다. 전화기를 거실의 충전기에 꽂아 놓고 방에서 잠을 자도 귀가 예민한 저는 문자 도착 소리를 들었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나 따로 사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닐까, 걱정을 안고 문자를 보니 이랬습니다: "기온이 떨어져 매우 춥습니다. 외출시 보온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길이 미끄러우니 낙상 사고를 조심하시고 출근시 ..

동행 2022.12.16 (1)

사랑받는 자들은 (2022년 12월 11일)

누군가에게 제가 쓴 책을 보내주기로 한 지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냥 책만 보낼 수는 없고 마음 담은 몇 글자 새로 적어 함께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자꾸 늦어집니다. 보내려고 꺼내둔 책을 펼치니 하필 '사랑의 슬픔1'입니다. 사랑이 슬픈 이유는 사랑받는 자들이 사랑보다 먼저 떠나가기 때문일 겁니다. 남은 자들은 자신들에게 남겨진 사랑, 사랑할 대상의 부재로 인해 슬플 수밖에 없겠지요. 사랑이 떠나며 남긴 깊은 슬픔은... 그 사랑을 만난 기쁨, 그 축복을 상기하며 이겨내야겠지요... 사랑하기 좋은 계절, 겨울. 사랑, 그 후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시길 빕니다. 사랑의 슬픔 1 사랑받는 자들은 떠나가고 사랑하는 자들은 남는다 사랑받는 자들은 언제나 사랑보다 먼저 떠나간다 -- 김흥숙 시산문집 , 81쪽

나의 이야기 2022.12.11 (4)

노년일기 146: 아이와 노인 (2022년 12월 6일)

이 나라엔 태어나는 아이가 적어 큰일이라는데 태어난 아이는 외롭게 살거나 시달리거나 방치되거나 학대받곤 합니다. 노인들이 오래 살게 된 이유는 젊은이들이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라는데 이 나라의 노인들은 먹고 사느라 혹은 여생을 즐기느라 바쁘고 젊은이들 중엔 노인들을 백안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쁜 젊은이들이 낳은 아이들을 노인들이 돌보며 어울리면 아이들은 덜 외롭고 노인들은 기쁨과 보람을 느낄 텐데... 이 나라는 이래저래 낭비 많은 나라입니다. 아래의 시를 보면 제가 좋아하는 셸 실버스틴도 그런 생각을 했나 봅니다. The Little Boy and the Old Man Said the little boy, "Sometimes I drop my spoon." Said the lit..

동행 2022.12.06 (1)

노년일기 145: 그녀의 비늘 (2022년 12월 4일)

아흔 넘은 어머니를 누르는 중력 아주 눌린 노부는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다가 오히려 하늘로 돌아가시고 슬픔을 식량삼아 버티던 노모는 비척비척 십이월 젖은 낙엽 1분에 하던 일을 10분 걸려 하면서 왜 자꾸 채근하냐고 야속해 하는 어머니 혹은 낡은 비늘집 어제는 한 조각 오늘은 두 조각... 빛나던 비늘들 바래어 떨어지네 남의 집 같던 그 마음 이제야 알 것 같은데 그 목마름 그 성마름 먼지 털 듯 털어내시며 어머니 자꾸 사라지시고 내 손엔 빛바랜 비늘만...

나의 이야기 2022.12.0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