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민족화해협의회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가 지난 12월 30일 타계하신 김근태 선생의 유족에게 조문을 보냈다는 소식을 들으니 눈이 뜨거워집니다. 엊그제 어떤 경찰관이 25년 전 김 선생이 고문당했던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안전기획부 대공분실(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바뀌었음.) 취조실 앞에 김 선생을 추모하는 흰 국화 바구니를 놓은 것을 보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위대한 삶은 살아서보다 죽음 후에 더 크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김근태 선생의 삶과 죽음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김 선생은 지난 1985년 9월 4일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안기부(현 국정원) 대공분실에 끌려가 20여 일간 고문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여러 차례 당한 끝에 콧물흘림과 손 떨림, 파킨슨병 등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김 선생을 고문했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은 지난해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고문 기술자’가 아니라며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후안무치한 사람이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도의가 땅에 떨어져 목회자마저 다른 직업과 다를 바 없는 직업이 되었다고 하지만 수많은 민주 투사들을 고문한 범죄자가 목사가 되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이 ‘미디어 오늘’에 쓴 글에 있습니다.
“당연히 그에게 목사안수를 해 준 개신교 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근안 목사는 한국 개신교가 너무나 깊은 병에 빠졌다는 증거다. 설사 이근안이 목사되기를 원했다해도 개신교 내의 모든 교단들은 이를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다. 교회는 이근안에게 이렇게 권면해야 옳았다. ‘당신의 손에 영혼과 육신이 망가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가능한 한 직접 찾아뵙고 사죄하고, 남은 여생은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라. 그게 진정한 참회고 그래야 당신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것이다’라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근안은 버젓이 목사가 됐다. 이근안 목사는 최근까지 자신의 행위를 애국으로 강변하며, 자신이 파괴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가정을 욕보이고 있다. 값싼 용서와 거짓 참회를 남발하는, 결정적으로 정의(正義) 관념과 윤리적 미감, 역사의식이 부재한 한국개신교는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사죄와 참회가 요구되는 건 이근안 뿐이 아니다. 그에게 목사 안수를 준 교단과 그 교단을 품고 있는 개신교계 전체가 돌이켜 회개해야 한다. 정의와 윤리가 없는 개신교의 미래는 암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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