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두고 헌 해에 만났던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부르면 달려올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불러도 다시 오지 못할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름은 우연이겠지만 인연도 우연일까요? 새해가 오기 전에 새 수첩 하나를 사서 묵은 수첩의 이름들을 옮겨 적겠지요. 어떤 이름들은 새 수첩에 오르는 대신 낙엽처럼 과거가 될 것입니다.
백무산 시인의 시집 <初心>에서 만난 시 '그 이름들 위에'를 읽으며, 그와 저의 닮은 서정,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닮은 점들을 생각합니다. 새해는 두 차례의 선거가 치러지는 '정치의 해'이니 '초심'이란 말이 남발되고 눈꼴 사나운 모습도 많겠지요. 그럴 때마다 내 눈에 거슬리는 사람과 나의 닮은 점을 생각하면 이해나 용서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 이름들 위에
한 해가 또 저물어가는 이런 밤들은
공연히 고요하고 거룩하다
하긴 소멸하는 것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아픔으로
살아 있는 모든 목숨이 깊어져 가는 이런 밤이
어찌 거룩하지 않을까 눈마저 내리는 밤
잠 못 들어 깊은 밤 나는 새로 사온 수첩에
삼 년이나 닳아 너덜너덜해진 수첩 속
이름들 하나하나 옮겨 적는다
내게 와서 저물어가는 것들이 서글퍼진다
한땐 다정했던 이름 위에 줄을 긋는다
내 잘못 살아서 잃어버린 이름들 위에도
기다리다 지쳐버리고 떠난 이름들 위에도
세상 무거운 짐 지고 젊음 다 바친 사람
지난 여름 영구차로 바래다준 이름 위에도
차마 줄을 긋는다
눈물로 떠난 이름들 가슴 치며 가버린 사람들
그 상처들이 얼마나 깊었을까
그 이름들 위에도 속죄하듯이 줄을 긋는다
그 이름들 위에 밤이 내리고 눈이 내린다
돌아보면 한 생이 이리 허망해
뜨거운 눈물로 안아보기도 전에
돌아서서 저만큼 찬바람 분다
어둠에 돌아가는 길모퉁이
눈이 내려 다 지우는데
나에게 와서 저물어가는
모든 이름들 위에 눈이 내린다
내 이름 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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