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다시 그대에게 (2008년 7월 11일)

divicom 2009. 12. 8. 09:39

“다시 그대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쓰는 행위는 나를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고 부치지 않음은 그대를 평안케 함이다.
시간이 큰 강으로 흐른 후에도 그대는 여전히 내 기도의 주인으로 남아 내 불면을 지배하는 변치 않는 꿈이니, 나의 삶이 어찌 그대를 잊고 편해지겠는가...“

이렇게 시작하는 연애편지를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라는 노골적인 제목의 책으로 출간한 게 1991년 1월입니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였던 1980년대에 연애편지나 끼적거렸다니?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에, 영어 신문기자라는 어정쩡한 신분으로 척박한 시대를 살며 배설처럼 써두었던 글 조각들이 우연히 책이 되었으니까요. 책을 낸 후 부끄러움으로 오래 잠을 못 이루던 생각이 납니다.

옛날에 지은 죄를 상기시킨 건 몽골에서 날아온 이메일입니다.“김 흥숙 기자(?)님!!!”이라는 호칭의 “기자”뒤에 붙은 물음표가 격조했던 시간을 말해줍니다. 메일 말미에, 저로부터 위에 인용한 책을 받았다고 쓴 걸 보면 그녀와 제가 헤어진 게 90년대 초였나 봅니다. 80년대 중반 제가 출입하던 정부 부처의 직원이었던 그녀는 지금 한국 국제협력단의 일원으로 몽골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나 낮은 목소리에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안경 뒤에 숨은 눈이 지적인 호기심으로 반짝이던 게 생각납니다. “반가운 마음에 두서없이 소식” 전한다는 그녀만큼이나 저도 반가웠습니다. 물음표와 느낌표를 그녀만큼 넉넉히 넣고 전화번호까지 붙여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오랜만에 제게 연락을 준 건 글 때문입니다. 고국의 인터넷 동네를 들락거리다가 제 글 하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글 옆에 붙은 사진 속 제 얼굴이 예전 얼굴과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같은 것 같기도 해 그 글 앞뒤에 실려 있던 글 모두를 읽었답니다. 읽고 나니 연락을 하고 싶었고 서울에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제 책을 출판했던 출판사를 통해 이메일 주소를 알아냈다고 합니다. 늘 부끄러움이었던 제 책이 참으로 고맙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녀의 친구도 고맙습니다. 이 책과 그 친구 덕에 반갑고‘즐거운 편지’를 받게 되었으니까요.

신기한 건, 이 편지가 울란바토르에서 서울까지, 그 먼 길을 날아와 컴퓨터 안에서 저를 기다리는 동안 저는 다른 친구와 밥을 먹으며 황 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글 덕에 소식이 끊겼던 이로부터‘즐거운 편지’를 받은 적도 있고, 새 친구를 만나 즐거운 관계를 시작한 적도 있습니다.

그녀의 편지는 하필 글이 무슨 소용일까 회의와 자문을 거듭할 때 날아들었습니다. 어느새 글마저 외침이 되어버린 시대, 걸러지지 않은 문장들이 때론 면도날처럼 때론 야구방망이가 되어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시대, 이런 시절을 살면서 일기 아닌 글을 자꾸 써 세상에 내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렇지 않아도 눈과 귀를 괴롭히는 소음에 한 양푼의 깨어진 사기 조각을 던지는 것과 뭐가 다를까. 칼럼이란 기껏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 패임을 확인하게 하거나“자아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줄뿐,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겐 스쳐가는 바람만도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럴 때 날아든 편지, 엊그제 어둔 하늘을 비추던 초승달처럼 가슴 한 쪽을 비춰줍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그녀로부터 두 번째 메일이 왔습니다. 제 답장을 받고 제가 쓴 글을 더 찾아보았으며, 어떤 신문에 실린 제 사진 속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모습을 만났다고 합니다. 저는 저대로 가본 적도 없는 몽골이 갑자기 친구네 마을처럼 느껴집니다. 몽골에서는 날씨와 자연 경관이 가장 좋은 때인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나담축제>>라는 국가적 행사가 열리며, 축제가 끝나면 여름이 다 갔다고 생각한답니다. 한참 비가 오지 않다가 3주째 계속 내린 비로 초록이 절정에 달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우리 중부지방의 논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그녀의 담백한 글은 꼭 예전의 그녀를 닮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몽골은 시간은 많은데 즐길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활용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살다보면 그 많은 시간도 모자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무심히 썼을 두 문장이 더위 탓을 하며 게으름을 피우던 제 머리를 톡 튕기고 달아납니다. 몽골에서 2년을 근무한 그녀가 내년 3월에 서울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다시 만날 때 그녀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글을 열심히 써야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을 바꾸지 못하고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 어떤가, 잃었던 친구를 찾아주고 숨어있던 친구를 찾아내주지 않는가. 회의어린 질문을 그만두고, 그만둘 수 없으면 잠시 멈추고, 열심히 쓰자고 마음먹습니다.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글이 많은 시대라면 이편과 저편 사이 경계를 지우는 글을 쓰고, 상처 내는 글이 많은 시대라면 그 상처에 거즈를 덮는 글을 쓰자고. 할 수만 있으면 그녀처럼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글을 쓰자고, 착한 아이처럼 결심합니다. 그녀와 나를 다시 이어준 책의 한 구절을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죽는다는 명제만큼이나 양보 없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원칙을 알고 나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한가지뿐인가 합니다. 언젠가의 재회를 위한 준비 말입니다. 그 만남이 며칠 후이든 몇 년 후이든, 또는 이곳에서건 저 세상에서건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시간의 장난을 이겨낸다는 것입니다.”

모든 글은 편지입니다. 답장이 올 때도 있고 오지 않을 때도 있고, 이해를 받을 때도 있고 오해를 받을 때도 있지만 편지는 편지입니다. 제 모든 사소한 글들이 기다림 가득한 사랑의 편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를 꾸짖을 때조차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처럼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글에서도 사랑이,“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이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자, 다시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세상 곳곳의 그대들이여, 부디 제 사랑을 받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