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처음 만난 건 8, 9년 전입니다. 경주네가 3층 빌라의 3층 저희 옆집으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어느 주말 아침 산책을 하러 내려 갔다가 마당에 홀로 있는 경주를 만났습니다. 왜 혼자냐고 물으니 가족들이 자신만 두고 테니스를 치러 갔다 했습니다. 혼자 버스를 타고 테니스장에 가기가 뭣하여 그러고 있다고 했습니다. 늦잠을 자느라 함께 가지 못했으니 가도 혼날 거라고 했습니다.
그날 경주의 이름을 처음 알았습니다. 경주라고 하기에 "경주? 서울 부산 대구 경주 하는 경주? 호오, 신라의 수도 경주란 말이지?"하고 놀렸더니 경주의 굳은 얼굴이 풀어졌습니다. 못된 저는 경주를 꼬드겼습니다. "가족들이 너를 두고 갔으니 너는 그곳에 가지 않음으로써 보복해라, 테니스장에 가지 말고 나하고 숲에 가자." 당시 경주는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이었습니다. 이 아줌마를 따라가는 게 옳을까,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저를 따라왔습니다. 동행은 즐거웠고 그 덕에 경주와, 또 경주네와의 우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누나 주영은 바이올리니스트이고 경주는 영어 박사였습니다. 주영의 바이올린 수준이 높아 연습하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외국에서 산 적도 없는 경주의 영어 실력이 어찌나 높은지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남매는 건방지지 않았습니다. 주영과 경주가 제 이웃이라는 게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누구에게 경주를 소개할 땐 "내 친구 중에 가장 젊은 친구"라고 소개하곤 했습니다.
경주와 주영도 저희와 이웃임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이웃으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집에서 18년이나 살던 저희 가족도 경주네와 헤어지는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저희가 먼저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놀란 경주네를 두고 떠나올 땐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저희가 떠나고 오래지 않아 경주네도 그곳을 떠나 안산으로 이사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지만 경주네와 저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 만난 후 주영과 경주의 팬이 되어버린 제 마음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남매의 어머니인 윤주씨가 아이들을 깎아내리면 --물론 겸양하느라 그랬겠지만-- 제가 큰 소리로 제지하곤 했습니다.
어제 오전 윤주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경주가 간절히 가고 싶어하던 대학교의 수시 모집에 합격했다고 했습니다. 어찌나 기쁜지 전화통이 깨어져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것 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 경주에 대해서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좋은 학교라서 기쁜 것보다는 경주가 원하던 학교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경주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며 쌓아가는 성취가 좋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반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전문계 고등학교 (예전의 실업계 고교)에 진학했던 경주,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혼자 공부했던 경주가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저와 숲으로 가는 길에서 쑥을 뜯던 경주, 낡은 축구화를 수선해 신고 축구하던 경주, 수줍은 표정으로 제게 영어를 물어보던 경주... 과거의 경주들과 함께 미래의 경주들도 떠오릅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그러나 지치지 않고 자기 길을 갈 경주, 내 친구 경주가 자랑스럽습니다. 경주야,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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