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도올 김용옥 특강 중단 (2011년 10월 26일)

divicom 2011. 10. 26. 09:00

연예공화국이 되어버린 이 나라,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퀴즈 프로그램은 많지만 지적인 사유를 부추기는 프로그램은 드뭅니다. 그런 의미에서 EBS가 12년 만에 도올 김용옥 교수의 특강 <중용, 인간의 맛>을 방영하는 게 참 좋았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 밤 10시40분에 방영되는 본 방송과 토요일과 일요일 밤 11시에 하는 재방송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고 학문만 하는 사람 중에 김 교수만큼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들이 그가 어떠네 저떠네 떠들어댔지만 저는 그의 텔레비전 강의를 듣고 그의 책을 읽으며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동서양 철학을 넓고 깊게 공부하고 그만큼 알아듣기 쉬운 말로 철학을 대중에게 강의하는 학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EBS에서 도올의 강의를 방영 중단한다고 합니다. EBS 측은 이미 김 교수에게 방영 중단 심의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강의 중 욕설·속어·종교적인 문제 등으로 민원이 자주 들어왔다고 하지만, 4대강 사업 비판 등에 대한 외압 때문이라고 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근엔 학생들에게 ‘나꼼수’를 들으라고 말했다고 하니 강의를 중단하려 하는 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의 강의를 들어 봤지만 문제가 될 정도의 욕설이나 속어, 종교적인 문제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가 '나가수'는 좋은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비전이 없다고 하거나, 현 정권을 충분한 정보와 균형감각으로 비판하는 인터넷 방송 '나꼼수'를 들으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이 강의의 교재로 펴낸 책 <중용, 인간의 맛>에서도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보궐선거, 특히 서울 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떨어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도올의 강의 중단과 같은 사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민과 국민에겐 정부를 비판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민주공화국에서 공기와 같은 필수요소입니다. 시민이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없다면 이곳은 민주공화국도 아니고 지금은 21세기도 아닙니다. 고대 독재 왕정 국가와 다를 것 없습니다. 


강의가 중단되어도 김 교수는 큰 손해를 보지 않을 겁니다. 지난 달 출간한 책 <중용, 인간의 맛>이 더욱 잘 팔릴 테니까요. 손해는 시청자, 즉 시민과 국민의 몫입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학자, 그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강의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유하는 기회를 놓치게 되니까요. 

 

그가 전에 쓴 책 <절차탁마 대기만성>에 썼던 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은 고전이 아닙니다. 모든 고전은 몽땅 다시 해석되어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건 똥경이건 모든 고전에 고전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모든 권력에 맹목적으로 복속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러한 고전이해는 '왕정시대'에 살았던 인간들의 멘탈리티에나 적합한 것인데 오늘 '민주시대'를 구가하는 인간들도 고전이해에 있어서는 그러한 멘탈리티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개헌문제를 놓고 이와같이 기약없는 운명을 건 단식투쟁을 해야만 하는 것도 이러한 우리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우리민족은 언어의 질곡에서, 종교의 질곡에서, 권위의 질곡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질곡을 가중시키는 어떠한 정치체계도 이 땅에서 물러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