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낮은 목소리 (2011년 10월 17일)

divicom 2011. 10. 17. 11:22

며칠 전 위층에 살던 가족이 떠났습니다. 1년 전이던가 반상회에서 그 부부를 처음 보고 아연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말을 어찌나 똑똑하게, 큰 목소리로 하는지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주민들은 한 번도 그 부부처럼 말하지 않았지만 예의를 지키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부부는 집안 공기를 좋게 하기 위해 공동벽에 구멍을 뚫어 환기구를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며칠 살아보진 않았지만 집의 공기가 나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자기네 소유이지만 전세를 놓았었는데, 그때 가끔 그 집에 와보면 공기가 나빴다는 것입니다. 옆집의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반대했고, 저는 우선 좀 살아본 후 다시 의논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전에 그 집에 살던 가족이 늘 문을 꼭꼭 닫고 살았으니 창문을 가끔 열어 환기를 해보라고도 했습니다. 가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을 때 보면, 그 부부는 둘이서 대화할 때도 논쟁적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서 살든 두 사람이 조금 편해졌으면,우선 목소리부터 낮췄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보듯, 요즘은 낮은 목소리로, 생각하며 말하는 사람들이 손해보는 시대입니다. 목소리가 크고 아나운서처럼 말을 쉬지 않고 해야 말 잘한다,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말을 똑똑하게 하는 사람이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금의 철학자들이 지행합일(知行合一)과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강조하는 것은 말만 번지르르하고 행동은 다르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의미있는 말, 마음이 담긴 말은 큰소리로, 청산유수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나 석가의 목소리와 어투를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도 '도, 레, 미'보다 높은 음을 내시지 않고, 천천히, 생각하며 말씀했을 겁니다.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의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 중에 나 후보는 똑똑한데 박 후보는 너무 어눌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토론은 말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판은 싸움판이었습니다. 정치판에 오래 있었고, 상대에게 상처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경원 후보가 말싸움을 잘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제 정치는 변해야 합니다.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말로 싸워 이기는 정치가 아니라 여러 의견을 경청해 새로운 안을 내는 정치로 변해야 합니다. 21세기를 '통섭의 시대'라고 할 때 '통섭'은 바로 그것을 뜻합니다. 지금 이 나라는 역사이래 가장 심한 '소음의 시대'입니다. 낮은 목소리로 지행합일을 보여주는 시장이 나왔으면, 그래서 서울부터 좀 조용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