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년 전 미국에 출장 갔을 때, 사람들의 몸매가 그 사람이 속한 사회적, 경제적 계층을 나타낸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제법 행세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정부나 기관에 가면 입구의 문지기나 안내원은 비대해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군살없는 몸매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잘 사는 동네와 가난한 동네는 건물을 비롯한 동네의 모습에서 차이가 나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몸매도 아주 다릅니다. 가난한 동네에 비만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오늘 서울경제신문에는 이 현상이 단순한 인상이 아니고 사실임을 알려주는 기사가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비만학회가 지난 1998년과 2007~2009년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했더니 소득 상위 25퍼센트 가정의 소아·청소년 비만율은 6.6퍼센트에서 5.5퍼센트로 감소한 반면, 하위 25퍼센트는 5퍼센트에서 9.7퍼센트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저소득층 소아·청소년 비만이 증가한 주요 원인은 영양 불균형으로, 소득 하위 25퍼센트 가정의 소아·청소년은 에너지 섭취량이 235㎉ 늘어났지만 다른 소득층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섭취하는 지방의 양도 하위 25퍼센트에서는 15.4g 늘어난 데 비해 상위 25퍼센트 계층에서는 8.1g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합니다.
이같은 결과는 저소득층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지방 함량이 높은 값싼 고열량 저영양식(패스트푸드) 섭취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소득층 어린이와 청소년은 살이 찌지 않는 웰빙 음식과 채소ㆍ과일을 많이 먹어 비만율이 낮지만, 생계를 위해 부부가 다 일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은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소아ㆍ청소년 비만 인구율은 1998년 5.8퍼센트에서 2009년 9.1퍼센트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하여 비만은 이제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비만으로 인한 만성질환은 연간 1조8천억원에 가까운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하는데, 소아ㆍ청소년 비만의 68퍼센트는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고 소아ㆍ청소년 비만자의 37.5퍼센트는 이미 당뇨병ㆍ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지부는 16일 비만의 날을 앞두고 전문 학회, 건강단체 등과 함께 비만 예방 실천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칠 계획이라고 합니다. 복지부는 "어린이 먹을거리 안전기준 강화, 식생활 개선 홍보, 규칙적인 운동실천 홍보 등 적극적인 비만 예방대책을 수립해 추진할 방침"이라고 한다지만, 제 생각엔 그보다 급한 일이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모든 학교에서 균형잡힌 무상급식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생계를 위해 뛰는 동안 혼자 있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무상급식할 돈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이 아이들이 병투성이 성인이 되어 초래할 사회경제적 비용에 비하면 적은 액수이지요.
영양분은 없고 칼로리만 높은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이 적어도 하루 두 끼는 학교 혹은 안전한 급식 장소에서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음식을 잘 먹는 어린이는 밝고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밝고 건강한 사람들은 대개 정신도 건전합니다.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든다"는 뜻이지요.
정부는 출산율이 낮아 큰일났다며 아이 낳기를 독려하지만, 낳아 놓은 아이를 제대로 먹이고 제대로 키워낼 수 있게 해주면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줄어들 겁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아이의 몸매, 나아가서는 아이의 운명이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삶이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부모들로 인해 규정되고 불평등하게 되는 것이지요. 정부의 역할은 이런 식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입니다. 개인의 몸매가 사회적 계층의 표징이 되지 않게 정부의 노력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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