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나이 먹는 즐거움 (2008년 1월 11일)

divicom 2009. 11. 19. 12:06

1978년 1월에 처음 만났으니 꼭 30년 전입니다. 제가 다니던 신문사에 한 해 후배로 들어온 친구, 반짝이는 두 눈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제가 사회부 1년차 기자일 때, 친구는 외신부의 견습 기자가 되었습니다. 온 종일 신문사 안에 있으니 지루할 것 같았습니다. 외신부 부장에게 취재 경험을 쌓게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아 함께 나갔습니다. 그때는 그게 30년 우정의 시작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일하는 부서는 달랐지만 틈만 나면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의 20대는 음울했습니다. 유년의 어두운 기억과, 사춘기를 넘어 밤잠을 설치게 하는 실존적 물음들에 대해 끝없이 얘기를 주고 받다보면 우린 만나기 전부터 알던 사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회적 상황 또한 우리의 우정에 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오래 지속되어온 독재 정권은 파국을 향해 가고 있었고,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는 남성 중심의 사회인데다, 영어는 아직 글로벌 언어가 되기 전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도도 없이 모르는 세계를 헤매는 가난한 여행자들처럼 소수의 여기자로서, 또 당시 언론계의 사생아라 할 영문 신문의 기자로서, 열등감과 우월감이 뒤섞인 시절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각기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배를 키워 아기도 낳았습니다. 광주민주화 혁명을 다만 기사로 쓰고, 계엄 하에서 인쇄 전 신문 검열을 받으러 다닐 때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우리 신문사가 88올림픽 공식 신문을 만들 땐 그 신문제작팀에 차출되어 땀 흘리는 그를 생각하며 부끄러워하고 마음 아파한 적도 많았습니다.

등 떠밀리듯 서른에 들어서던 날도, 마흔을 앞두고 불혹을 결심하던 날도, 제가 겪는 슬픔과 기쁨 속엔 늘 그가 있었으니 그의 외로움과 즐거움 속에도 언제나 제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1980년대 말, 다니던 신문사를 일 년 간격으로 그만둔 후, 그는 대구에서 저는 서울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중년의 문턱으로 들어섰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우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20세기의 마지막 봄에 다시 같은 직장에서 만나게 된 건 섭리보다는 염원이었을 겁니다. 남들은 분 바른 얼굴에 염색을 하고 많이 웃는 우리만을 우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태연한 웃음, 그 밑바닥을 받치고 있는 오래된 비감悲感과 인내까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 일터에서의 행복한 시간은 제가 4년 3개월 만에 그곳을 그만두는 바람에 끝이 났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놀라우리만치 끈질긴 인연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가 50대 여성으로 사는 법을 연재해온 신문에 저 또한 칼럼을 쓰게 되었거든요. 주제도, 문체도, 글이 실리는 요일도, 페이지도 다르지만 그와 내가 나누어갖게 된 또 하나의 공통점이 반갑습니다.

지난해의 끝, 제 칼럼이 그 신문에 처음 실리고 나흘 후, 그동안 그가 쓴 글이 책이 되어 나왔습니다. 제목은 “나이 먹는 즐거움.” 그의 예쁜 얼굴을 익살스럽게 과장한 일러스트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배시시 벌어지지만, “나는 파티광이다” 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인 “유서”까지, 60여개의 짤막짤막한 글을 읽다보면 큰 소리로 웃게도 되고 눈시울을 적시게도 됩니다.

지난 30년 동안 친구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뛰어난 글재주를 왜 일찍 알아보지 못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구와 서울에 떨어져 살며 주고받던 편지 속에 이미 그의 감성과 지성이 반짝였는데도 말이지요. 솜씨 좋은 어머니의 아들딸들이 어머니의 맛난 음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듯, 너무 오래 친구의 재능에 길들여져 그 진가를 잊었었나 봅니다.

나이 드는 게 싫어 새해가 온 것도 싫다고 하는 분들, 젊어 보이기 위해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자주 드나드는 분들, 고부 갈등으로 머리 아픈 분들, 늙어가는 배우자가 밉다고 하는 분들, 자식이 원수 같다고 하는 분들, 곧 시부모가 되고 장인 장모가 되는데 적정한 부모 노릇은 어디까지일까 고민하는 분들... “나이 먹는 즐거움”을 보십시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네? 책 광고를 하는 거냐고요? 네, 노골적이라는 것, 저도 압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친구가 먼저 반칙을 했거든요. “30년만의 자축 파티”라는 제목의 글에서 제게 “존경과 사랑을 바친다”고 했으니 저 또한 마음을 열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는 이미 내 삶의 소중한 일부. 내 생각 중 많은 부분을 그에게서 빌려와 내 것처럼” 쓰고 있습니다. 배우자나 자식을 자랑하는 건 팔불출이라지만 친구 자랑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인수위에 몸을 담고 있지도 않고 “ㅅ” 교회를 다니지도 않으며, 서울 시청 출신도 “ㄱ” 대학 출신도 아니니 말입니다.

엊그제 친구가 이메일에 써 보낸 것처럼 “우리 만난 지 30년이 되었음을 대외만방에 알리고 앞으로 30년을 더욱 재미나게 살겠다는 선언”으로 보아 넘겨주시지요. 인생이 소풍이면 우정은 동행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동행을 발견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