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 (2011년 7월 5일)

divicom 2011. 7. 5. 21:38

전 한국일보 주필 김수종 선배는 제주도 출신입니다. 환경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이면서 현재는 제주 출신의 유망한 젊은이들이 기숙하는 탐라영재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최근 김 선배는 제주도를 '세계 7대 자연경관'에 포함시키기 위해 진력하고 있습니다. 김 선배가 오늘 자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에 쓰신 글은 그 목표를 위한 선배의 열망으로 충만합니다. 한 번 읽어보시고

001-1588-7715로 전화하여 제주도에 한 표 투표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려니 숲의 전화투표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문화권이 선호하는 숫자를 매개로 한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서양인은 7(일곱)을 행운과 안전을 상징하는 숫자로 자주 사용합니다. 보잉 여객기는 7시리즈(737, 747, 777)로 나가고, 이안 플레밍 원작의 스파이 영화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의 암호명은 ‘007’입니다. 인기 디즈니 캘럭터로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있고, 음료 브랜드 ‘세븐업’(7-UP)에서도 7이 강조됩니다.

 

창세기에 신이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고 7일을 안식일로 삼은 것을 보면 그 연원이 구약시대부터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리스 로마시대에도 7을 좋아했나 봅니다. 서기 200년경 동로마 제국의 필론이란 사람이 고대인들이 만든 건축 구조물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 7개를 골라 'Seven Wonders of Ancient World'라고 명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번역되고 있습니다. ‘기자의 피라미드’만 남아 있고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나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등 나머지 6개는 모두 존재하지 않지만 오랜 동안 사람들의 인식 속에 새겨진 7이라는 숫자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스위스 태생의 버나드 웨버라는 사람은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에서 새로운 착상을 도출해냈습니다. 비행가, 탐험가, 영화제작자, 박물관 큐레이터로 다양한 직업적 경험을 거친 웨버는 'New 7 Wonders 재단'을 만들어 현대판 ‘세계 7대 불가사의’ 선정 캠페인을 벌입니다. 그는 2007년 중국의 만리장성, 인도의 타지마할,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등 7개의 인공 구조물을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했습니다. 시대를 읽는 감각을 가진 웨버는 고대의 불가사의가 필론이라는 사람에 의해 정해졌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넷과 전화를 통한 세계인들의 인기투표에 의한 선정 방법을 택했습니다.

 

웨버는 2007년 자연경관으로 눈을 돌려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캠페인에 들어갔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신청한 220개 자연경관을 2년 간 투표에 부쳐 77곳을 뽑았고, 2009년 7월 전문가들로 구성된 재단 위원회에서 다시 28곳을 선정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아마존 열대우림과 그랜드 캐년 등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고, 제주도가 화산섬의 특이한 경관에 힘입어 이들 후보와 나란히 서서 지금 전 세계인의 투표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제주도는 세계적으로 경이로운 28곳의 자연경관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오는 11월 11일 28개 후보지 중 7곳이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포됩니다. 제주도는 7대 경관에 들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도청에 새로운 담당부서도 만들고 전 공무원과 도민에게 전화투표 캠페인을 독려합니다. 민간운동 차원에서 ‘제주-세계7대자연경관범국민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정운찬 전 총리가 그 위원장을 맡아 국내외 득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제주도는 베트남의 하롱베이와 함께 관심이 고조되는 후보로 뛰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 특정 개인이 주도해서 만든 민간단체가 벌이는 캠페인이기 때문에 공신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둘째, 이 넓은 세계에서 제주도가 과연 ‘세계 7대’란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느냐는 회의적 시각입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가나 공공기관은 훌륭한 집행의 주체는 될 수 있어도 창조적 발상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스위스의 스키 마을 다보스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다보스 포럼’(일명 세계경제포럼)은 30대 약관이었던 클라우스 슈바브라는 독일 경제학자의 착상에 의해 만들어져서 전 세계의 정치와 경제에 영향을 줍니다. 근대 올림픽도 쿠베르탕이라는 프랑스인이 고대 올림픽의 부활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탄생시켰습니다.

 

이 지구상에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핀 꽃 한 송이를 보고서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더 강렬하게 느낍니다. 보는 눈은 상대적입니다. 인공 구조물을 선정하는 2007년의 캠페인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프랑스인보다 더 많이 파리의 에펠탑에 투표했다고 합니다. 국내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화산 경관의 규모로 보면 제주도는 백두산이나 후지산보다 뒤처지지만 그 다양성으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빼어나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이 캠페인은 인기투표에 의한 것이지 전문가들이 선정하는 것이 아닌 데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28등에서 7등으로 올라가는 것이 도전할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요.

 

한라산 자락 원시림에 일본 사람들이 뚫어놓았던 18㎞ 길이의 임도(林道)가 지금은 시민과 관광객이 즐겨 걷는 숲길로 변했습니다. 현지에서는 이곳을 ‘사려니 숲’이라고 부릅니다. 난대림 경관이 아주 독특합니다. 제주도를 자주 드나드는 선배 분에게 이 숲길을 소개했더니, 그는 이 숲길과 주변 오름에 심취해서 제주도에 갔다하면 이곳을 즐겨 탐방합니다. 최근 이 분이 고교 동창생 커플 10여 쌍을 이끌고 제주도 구경을 갔다고 합니다. 그 선배는 제주도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사려니 숲으로 안내했더니 일행은 “제주도하면 바다와 한라산이 전부인 줄 알았더니 이런 데가 있었냐.”고 감탄했습니다.

 

선배는 이때 “그렇게 좋으면 제주를 ‘세계 7대 자연경관’ (New 7 Wonders of Nature)에 선정하는 투표를 하자며 001-1588-7715로 전화를 걸어 제주에 투표하도록 권유했습니다. 모두들 휴대폰을 꺼내 전화투표를 몇 차례 했다고 합니다. 경이로운 사려니 숲길을 제공해준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제주도 주민들만 열심히 전화투표를 한다고 해서 인기가 크게 오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서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때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더욱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울-제주 항공편은 언제나 만석입니다. 근래 제주도의 자연이 무절제하게 훼손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전이 없이 개발을 생각하기 때문에 돈은 많이 들이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구성의 오류’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를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올려놓고 이에 상응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보전과 상생 방안을 요구해보면 어떨까요? 제주도의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