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리처드 기어 (2011년 6월 24일)

divicom 2011. 6. 25. 11:19

리처드 기어라는 배우를 좋아합니다. 다른 배우들과 달라서입니다. 그가 예술의 전당에서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하느라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 중이라고 합니다. 그에 대해 쓰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문제인지 전기가 문제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스무 번 켰다 껐다 하다 보니 인간 김 흥숙의 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야! 도대체 왜 그러니?" 스위치와 컴퓨터 본체를 두드리다 "어쩌라고?!" 성난 목소리로 따지기까지 합니다. 누군가 가까이서 저를 보고 있다면 참 어리석다고 할 겁니다. 화를 낸다고 컴퓨터가 작동하고 전기 문제가 해결될 것도 아닌데 혼자 씩씩거리니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지요. 마침내 바탕화면에 보라빛 재스민이 피어납니다. 기쁨보다 부끄러움이 전신을 휘감습니다.

 

리처드 기어는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아도 저처럼 성내지 않을 겁니다. 어제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처럼 '겉모습은 미국인, 정신은 티베트 승려'이니까요. 그가 불교를 처음 접한 건 1978년 티베트를 방문했을 때라고 합니다. 33년 전이니 그의 나이 29세 때입니다. 거대한 중국을 상대로 스스로를 지키느라 괴롭고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으면서도 자비심과 무소유를 실천하는 티베트인들을 보며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달라이 라마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일보 이대현 논설위원이 오늘자 '지평선' 칼럼에 쓴 걸 보면 "불교는 그에게 호기심도, 힐리우드 스타로서의 기행(奇行)도, 그 알량한 오리엔탈리즘도 아니"라고 합니다. "30여년이란 긴 세월 불도(佛道)를 걸으며 그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었고, 진정한 소통인 지극히 단순함과 정직함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가 선불교 수행을 시작한 건 '정신에 관한 관심' 때문이었고 오랜 수행 덕에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기능하는지" 알게 되었으며 "일상에서 생기는 일들을 불법으로 바꿀 줄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오늘 아침 KBS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자신은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와 제가 '빚쟁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니 '빚'진 자라는 사실조차 유쾌합니다.


티베트불교 승려로 출가하려는 그를 만류한 건 달라이 라마라고 합니다. "지금 머문 자리에서" 충실하게 배우로 사는 것이 그 자신과 세상에 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는 겁니다. 한때 구름처럼 살기를 소망했던 저도 "지금 머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제 육신과 헤어지기 전에 최소한 컴퓨터로 인해 성내는 일 따위는 다시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우선 그가 찍어온 '순례의 길'을 보고 걸으며 그 풍경 속 그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