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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일기 261: 노노 케어 하우스 (2025년 7월 16일)

divicom 2025. 7. 16. 10:13

새벽 다섯 시 조금 넘은 시각,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합니다.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더 시원하겠지요?

 

그러면 그렇지, 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할 뿐만 아니라 맛이 좋습니다. 학교에서는

공기가 무색, 무취의 기체라고 가르치지만,

움직이는 공기인 바람엔 빛깔도 있고 향기도

있습니다.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지요. 

 

창가에 서서 향긋한 공기를 호흡하면 오래된

산에게 위로받는 느낌이 듭니다. '힘들지? 알아,

그래도 잘 견뎌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산이 늙어 가는 저를

위로하는 것이지요.

 

우리 집은 '노노(老老)케어 하우스'입니다.

'노노케어'는 노인이 노인을 돌봄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산의 케어를 받은 저는 수건을 찬물에 적셔 들고

냉장고에게로 갑니다. 여름이 깊어가며 냉장고의

신음 소리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30년 넘은 

냉장고의 옆구리가 뜨끈뜨끈합니다. 찬 수건을

냉장고 옆구리에 가져다 댑니다. 냉장고가 찬

수건의 위로를 음미하는 듯 조용합니다.

 

냉장고를 위로하고 누웠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낡은 돗자리에 짐 같은 몸을 누이니, 다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그새 달아오른 이마를 식혀줍니다.

사랑은 뜨거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서늘한 사랑도 있다고 알려 주고 싶습니다.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 기도하고 아침을 먹고 나면

빨래를 합니다. 웬만한 빨래는 손으로 빨아 '헹굼+탈수'

해서 나이 든 세탁기의 노고를 덜어 줍니다. 

 

새것이 없는 우리 집은 '노노케어 하우스'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젊은이도 노인의 사정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노인은 똑똑하지 않아도 노인의 사정을

압니다. 우리 집 '노노케어'가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지속되길 바란다면 욕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