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각 13일 프랑스 칸에서 국제 영화제가
개막했습니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영화제입니다.
그러나 한국 영화는 3년 연속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칸에서 상영하는 한국
영화는 정유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안경'과 허가영 감독의
단편 '첫여름'뿐입니다.
한국 영화가 이렇게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평가들 중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으로
영화산업 구조가 바뀌어서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와 같은 변화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 이유는 '돈'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시네마라는 종합예술을 통해서 하고
싶은 사람들은 사라지고 '천만 관객'을 염두에 둔
사람들이 영화판을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큰 이유는 관객입니다. 말이 되든 안되든
대리 만족을 주는 영화에 쏠리는 관객이지요.
그 관객들이 '천만 영화'로 만들어준 '범죄 도시' 같은
영화가 돈을 버니 영화다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돈독에 오른 데다 관객들조차
순간적 대리 만족을 추구하니 영화는 '종합예술'이
아닌 오락물로 전락했습니다. 오락이 추구하는 것은
순간적 즐거움과 웃음이니 한국 영화는 어떤 소재를
다루든 웃음을 주기 위해 애쓰고, 웃음을 짜내기 위한
과장 연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세 번째 이유는 배우의 폭이 너무 좁다는 겁니다.
주연이 낯익은 건 그렇다 해도 늘 같은 조연들이 늘
비슷한 역할로 억지 웃음을 끌어내려 하니 식상합니다.
최근 두 편의 한국 영화와 한 편의 외국 영화를 보았습니다.
바둑을 다룬 김형주 감독의 영화 '승부'와 하정우 감독의
'로비', 그리고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의 '콘클라베'.
세 영화를 보고 우리 영화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승부'와 '로비' 모두 웃음에 희생된 영화였습니다.
'승부'... 참 멋진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아깝고 일본에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올해 칸 영화제에 장편 영화 6편이 초청됐다고
합니다. 일본 영화의 강점은 다양성이라고 하는데, 다양성은
바로 한국 영화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2025년 한국 영화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사회의
문제와 같습니다. 진지함과 정관, 질문의 부재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경쟁적인 이 나라의 삶, 사색도 반성도
없이 앞으로 내달리는 국민과 국민을 동물로 전락시키는
정치, 어린이 시기 없이 바로 어른보다 피로한 삶에 내몰리는
아이들, 부모 자격은 없으면서 아이를 자꾸 낳는 사람들,
소위 노인 복지 덕에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노인들, 돈이
없어 결혼을 꿈꾸지 못하는 젊은이들과 나이 들어 아이를
낳음으로써 아이에게 선천적 불리를 초래하는 사람들,
자본주의에 압사당하는 꿈과 사랑 ...
왜 한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냥 보여주기만 해도
공감을 일으킬 이 시대의 초상들을 못 본 체하며 억지
웃음을 짜내려 하는 걸까요?
영화 관련 정부 부처들은 시대착오적 잣대로 영화 속
흡연 장면과 대사 중의 욕설을 지워 영화 감상을 방해하는
것 말고 한국 영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통령 후보들의 관상 (2025년 5월 17일) (0) | 2025.05.17 |
---|---|
내 사랑은 하얀 재스민 (2025년 5월 11일) (1) | 2025.05.11 |
'헛똑똑이'들의 나라 (2025년 5월 8일) (4) | 2025.05.08 |
아, 민주당이여! (2025년 5월 3일) (1) | 2025.05.03 |
강남 3구 어린이의 우울증과 불안장애 (2025년 4월 29일) (1) | 2025.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