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에게는 나이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갓 스물의 탁구선수를 스승으로 부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어제 TV 생중계로 신유빈이
숙적 히라노 미우를 꺾는 것을 보고는 그를 선생이라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신유빈 선수가 제 스승이 된 것은 1시간 20분 접전 끝에
아주 힘겹게 승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유빈 씨가
패했다고 해도 저는 그를 스승이라 불렀을 겁니다.
신유빈 선수가 스승이 된 이유는 무엇보다 그를
그답게 만드는 천진함, 진력 (盡力), 자제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이루는 품격 때문입니다.
신유빈은 어제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 단식 8강전에서
히라노 미우와 만나 세 게임을 계속 이겼습니다.
신유빈이 네 번 이기면 경기가 끝나게 되니 히라노는
매우 불안했을 겁니다. 그는 옷이 땀에 심하게
젖어 옷을 갈아입어야겠다며 자리를 떴고 10분 가량
지난 후 돌아왔습니다.
10분... 생중계 게임 중 10분은 참 길었습니다.
제게는 20분쯤으로 느껴졌으니 신유빈 선수에게는
더 길게 느껴졌을 겁니다.
소위 '환복 꼼수'로 명명된 히라노의 게임 중 부재가
실격 사유는 아닐지 몰라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규정을 손질해야 합니다.
그 십분 동안 히라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옷을 갈아입고 온 히라노는 세 판을 내리 이겼고
마지막 7번 째 게임은 동점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접전 속에서 신유빈이 저의 스승임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유빈 씨는 어떤 경우에도 자제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유빈 씨 생애의 세 배 이상 산 제게도 자제는 어려우니
유빈 씨보다 겨우 네 살 많은 히라노 선수가 흔들리는 건
놀랍지 않았고, 나잇값을 못하는 저만 아주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게임 점수 4대3 (11-4 11-7 11-5 7-11 8-11 13-11)으로 이기고
4강에 진출한 신유빈 선수, 4강 경기에서도 여전히 의연하겠지요.
그대가 나의 스승입니다!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40802/126279120/2
https://sports.news.nate.com/view/20240801n4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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