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쑥맥, 쉽상, 산수갑산 (2022년 3월 15일)

divicom 2022. 3. 15. 11:02

국립 국어연구원에 따르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44만여 개의 주표제어 중 약 57퍼센트가 한자어이며,

거기에 한자어와 고유어가 결합한 복합어를 더하면

그 비율은 더 올라간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한자어를 빼면 우리말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한자를 아는 한국인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한자를 몰라 우리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는 늘고 있습니다. 잘못된 공교육의

탓이 크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경향신문 '우리말 산책' 같은 칼럼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러고 보니 '산책'도 '다행'도

한자어네요!

 

한자를 알아야 우리말 ‘쑥맥’에서 벗어난다

엄민용 기자

 

사람들이 너나없이 쓰더라도 표준어가 되기 어려운 말들이 있다. 한자말인 경우가 대표 사례다. 한자 각각의 음을 밝혀 적어야 하므로, 사람들이 자기가 소리 내는 대로 쓰는 것을 규범 표기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쑥맥’도 그중 하나다.

 

“답답한 연애, 쑥맥 같은 남자”라는 예문에서 보듯이 사리 분별을 못하거나 답답한 구석이 있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쑥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숙맥’이 바른 표기다. ‘숙맥’은 ‘숙맥불변(菽麥不辨)’을 줄여 쓰는 말로, 글자 그대로 “콩[菽]과 보리[麥]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숙맥불변’을 ‘숙맥’으로 쓰는 예에서 보듯이 여러 자의 한자성어를 두 자로 줄여 쓰는 말이 더러 있다. “어떤 일의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이르는 말”인 ‘십상’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다. “놀기만 하다가는 시험에 떨어지기 십상이다”라고 할 때의 ‘십상’ 말이다. 이 ‘십상(十常)’은 십중팔구(十中八九)와 같은 뜻의 말 ‘십상팔구(十常八九)’의 준말이다. 이 십상을 우리말 ‘쉽다’에서 온 말로 알고 ‘쉽상’으로 쓰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국어사전에 있는 말 중에서 거의 7할이 한자말이다. 따라서 한자를 모르면 우리말도 잘못 쓰기 쉽다. ‘삼수갑산’도 한자를 몰라 열에 아홉은 틀리는 말이다. “어떤 결심을 하는 문맥에서, 각오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강조하며 이르는 말”로 ‘산수갑산’을 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는 ‘산 넘고 물 건너 고생길이 훤하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등의 표현처럼 우리 생활에서 산과 물이 고생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이는 일이 흔하기 때문인 듯하다. ‘산과 물=고생’이라는 인식이 강한 까닭에 ‘산수갑산’을 별 의심 없이 바른말로 여기고, 그리 쓰는 것이다.

 

그러나 ‘산수갑산’은 ‘삼수갑산(三水甲山)’으로 써야 한다. 여기서 ‘삼수’와 ‘갑산’은 함경남도의 땅이름이다. 이들 두 지방은 조선시대 귀양지 중 하나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척박한 곳이었다. 길이 험해 사람이 드나들기 어렵고, 풍토병이 사람들을 괴롭혔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