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이 지나면 2021년도 끝이 납니다.
어수선하게 시작된 한 해가 끝에 이르니
소란 또한 극치에 이른 것 같습니다.
엊그제 세상을 덮은 하얀 눈은 그 소란의 입을 막으려는
거대한 마스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 같은 겨울 아침, 컴컴하고 조용한 세상이
잠자는 아기처럼 사랑스럽습니다.
어두운 길의 끝, 문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베이커리 카페에 들어가
검고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놓고 <방법서설>을 펼칩니다.
번역문은 어색하지만 의미는 카페인을 타고 스며듭니다.
손바닥만 한 책, 겨우 132쪽인데 며칠 걸려 읽었습니다.
프랑스어 원본을 우리말로 번역한 건지, 영어나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재차 읽는 일도 흔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번역한 책들은
어떨까... 돌아보곤 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을 때, 랭보의 시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원전을 직접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라도 공부하면 되겠지만
프랑스어 공부보다 급한 일이 많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쉬운 대로
원전의 제목 -- Discours de la Méthode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érité dans les sciences --을 구글에 쳐서 프랑스어 발음을
들어보고 따라 읽어 봅니다. "디스쿠르 드 라 메소드 뿌르 비엥... "
이 책의 4부에 저자 르네 데카르트 (Rene Descartes: 1596-1650)의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그러면, 생각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지금 우리 주변을 떠도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일까요?
좀비일까요?
아니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겠지요. 국어사전에 등재된 '생각 '만 해도 여덟 가지나 되니까요.
1.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2. 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대한 기억.
3.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거나 관심을 가짐. 또는 그런 일.
4. 어떤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음. 또는 그런 마음.
5.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상상해 봄. 또는 그런 상상.
6. 어떤 일에 대한 의견이나 느낌을 가짐. 또는 그 의견이나 느낌.
7.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하여 성의를 보이거나 정성을 기울임. 또는 그런 일.
8. 사리를 분별함. 또는 그런 일.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은 이 중 어느 것일까요?
2021년 말미 우리가 하는 생각은 이 중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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