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재스민꽃이 시들고 있습니다.
보라로 피었던 꽃이 하양이 되어도
향기는 변함없어 집안은 절간이었습니다.
시드는 꽃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시들다 말라 흙빛으로 떨어지면
나무는 꽃을 피운적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푸른 잎만으로 남은 한 해를 버티겠지요.
다시 봄이 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보라꽃을 등처럼 거울처럼 내걸고
밤낮 흔들리는 마음을 비춰보라 할 겁니다.
만물 중에 사유를 부추기지 않는 것은 없지만
꽃처럼 태연하게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것도 드뭅니다.
죽음과 삶, 피움과 시듦, 종말과 순환, 반성, 약속...
재스민 향기를 맡다보니 월트 휘트먼 (Walt Whitman: 1819-1992)의 시
'나의 노래 (Song of Myself)'가 떠오릅니다.
'나의 노래'는 52편으로 쓰여진 시인데
아래의 인용문은 그 중 '7' 편의 첫 문단입니다.
7
"Has any one supposed it lucky to be born?
I hasten to inform him or her
it is just as lucky to die,
and I know it."
--The Norton Anthology of Modern and Contemporary Poetry,
Vol. 1 Modern Poetry
"누군가 태어나는 게 행운이라고 한다면
서둘러 말해주려네
죽는 것도 꼭 그만한 행운이라고,
그리고 난 그걸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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