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서 좋은 점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묘비나 지방(紙榜)의 망자 이름 앞에 '학생 學生'이 쓰이는 것은
죽음의 다른 이름이 '배움을 그친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배울 기회가 있다는 것,
이 기회에 감사합니다.
어젠 신문에서 영어 단어 하나를 새롭게 배웠습니다.
임의진 목사님이 경향신문에 연재하시는
'임의진의 시골편지'에서 '페트리코 (petrichor)'라는
단어를 처음 본 것입니다.
'영어로 밥 먹고 산 지 한참인데 이제야 이 단어를 만나다니!' 하는
부끄러움도 컸지만, 모르던 단어를 알게 된 기쁨이 더 컸습니다.
게다가 그 단어는 제가 라테보다 좋아하는 '비 냄새'를 뜻하니까요.
임 목사님의 글에도 나오지만, 'petrichor'는 '바위'와 '돌'을 뜻하는
그리스어 'petra'와 'petros', 그리고 '신들의 혈관을 흐르는 액체'를
뜻하는 'īchōr'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비가 대지를 만나 풍기는 냄새는 영혼에까지 스민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래서, 비 오는 날 땅이 젖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임의진 목사님께 감사하며 글을 옮겨둡니다.
임의진의 시골편지]콧구멍 킁킁
입력 : 2021.05.06 03:00 수정 : 2021.05.06 15:53
실제로 큰 코를 가져 놀림을 받기도 했던 러시아 소설가 고골은 단편소설 <코>를 남겼다. 자다 깨어보니 코가 없어진 황당 사건. 관리이자 자칭 소령님 코발료프의 이야기. 누구는 예뻐지기 위해 코 성형수술을 한다. 코가 높아지면 눈도 덩달아 높아져 외롭게 될지도 몰라.
술을 탈탈 마시는 주정뱅이 아저씨는 코가 포도주만큼 빨개. 피에로도 빨간 코를 치켜들며 까불고 댕긴다. 코는 냄새를 맡으려고 달린 기관이지. 갖가지 냄새를 맡는데, 뭔가 사회적으로 구리고 썩은 냄새까지도 맡는다. 돈이 되는 부정한 일에 합세하는 걸 ‘냄새를 잘 맡는다’ ‘코를 들이민다’라고도 말한다. 어제는 비가 내렸는데, 비 냄새가 참 좋았어. 영어 단어에 페트리코(Petrichor)라는 게 있는데, 돌을 의미하는 ‘페트라’와 신들이 흘린 피를 뜻하는 ‘이코’가 합쳐진 말. 마른 땅이 비에 젖으면 풍기는 냄새가 ‘페트리코’다. 비 온 날 아무 일도 않고 멍 때리며 쉬는 걸 ‘비숨’이라고 한다. 여기에다가 비 냄새까지 보태지면 눈꺼풀이 내려앉고 곧바로 졸리기 시작.
봄 들판 시골엔 독특한 냄새가 있다. 예전 퇴비 내고 밭에 뿌려두면 온 동네에 똥내가 진동해. 차를 몰 때 창문을 열고 달리곤 하는데, 논밭에서 나는 냄새가 암만 구수해도 결국 창문을 올리게 된다. 잠시 그러다말겠지 기도해. 인간군상조차 인성이 모나고 악취가 심한 자들이 귀촌하여 다정하던 이웃 간의 인심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농촌의 주인공 세대가 바뀌면서 냄새도 바뀌고 있다. 개들은 콧구멍 킁킁대고 냄새로 세상을 읽지. 옛날 깐날 호랑이는 악인의 냄새를 맡고 산을 넘어 밤새 오두막을 노렸단다. 이제는 호랑이도 없고, 코발료프만 살아가는 세상. 맘 편히 비 냄새를 맡고 살아가면 세상 누구보다도 복 받은 인생.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5060300095&code=990100#csidx63b59511588e2d5bd60c15ff6ee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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