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73: 벤츠 할아범 (2021년 3월 18일)

divicom 2021. 3. 18. 17:59

오랜만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 카페에 갔습니다.

제겐 그 집 커피값이 비싼 편이라 잘 가지 못하는데

'선결제'를 해준 수양딸 덕분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맑디 맑은 수양딸이 이 혼탁한 세상에서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잘 알기에 자주 가진 않습니다.

 

창가에 앉아 대추나무에 날아든 어여쁜 산새를 보고 있는데

창문 앞 좁은 마당으로 검은 벤츠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뒷좌석에서 저보다 좀 더 나이들어 보이는 노인이 내리더니

대추나무 옆으로 다가가 카~악! 침을 뱉었습니다.

침을 뱉고난 노인이 창 안의 저를 보기에 온 힘을 다해

저주의 눈총을 쏘아주었습니다.

 

제 눈총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노인이 찻집의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계속 눈총을 쏘았지만 괘념치 않고

제 오른쪽으로 가서 한 테이블 떨어진 자리에 앉았습니다.

 

뒤이어 두 명의 노인이 더 들어왔습니다.

셋 중에서 제 눈총 받은 노인이 주로 얘기를 하는데

얼마나 크게 하는지 카페 안의 모든 귀에 들릴 지경이었습니다.

그  노인이 크음 크음 목을 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있는 돈 다 쓰지고 못하고 죽을 거야. 지금 통장에

한 3억 있는데 쓸 데가 없어."

 

그의 맞은편에 앉은 운전기사인 듯한 노인이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회장님은 그러시죠" 하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돈은 더러운 것이라 더러운 사람들 손에 머문다.'

물론 깨끗한 부자도 많지만, 그 순간엔 그 말이 제 격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노인이 좀 안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그가 아닌 그의 돈을 보고

올 것 같아서지요. 

 

제 통장엔 3억은커녕 3백만 원도 없지만

저는 그이보다 나은 하루를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이처럼 더러운 짓도 하지 않았고, 돈은 없어도

쓸 곳은 많은데다, 무엇보다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아까 그 할아범에게 하지 못한 말, 여기 적어둡니다.

침은 자기 차나 자기 집에 뱉읍시다! 

제발 나잇값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