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9월입니다.
가을벌레 소리 가득한 새벽 창가에 서서 세상이 묵언을 푸는 걸 바라봅니다.
침묵은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일까요?
국가 지정 '지공족(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이 된 지 이십 일이 되었지만
지공족 노릇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좋아하는데 버스를 탔던 사람은 환승 덕에
50원만 더 내면 지하철을 탈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서울 지하철은 지공족이 많아
적자라니 지공족 권리 행사는 가능한 한 유보하려 합니다.
사실 저는 지하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지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광이 들지 않는데다 자연 풍경도 없습니다.
지하철 안팎의 풍경은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라
그것을 보면서는 하늘이나 나무들을 볼 때와 같은 아름다움이나 평화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창문을 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겐 일종의 폐소 공포 경향이 있어서 비행기나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한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두는 편인데 지하철에선 창문을 열 수 없으니 괴롭습니다.
셋째는 승객들의 수다 때문입니다.
지하철은 속도가 빠른 덕에 먼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한참 동안 한 공간에 있기 때문인지 모르는 사람끼리 말을 주고받는 일도 흔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주로 나이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의 수다가 그 사람들에겐 즐거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피해를 주기 일쑤입니다.
며칠 전 강남에 갈 때 탔던 지하철 3호선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흰머리를 자격증 삼아 한 사람이 앉아 있는 우대석에 앉았습니다.
칠십 대인 듯한 그 사람과 제가 양끝에 앉고 가운데가 비어 있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사람 하나가 그 가운데에 앉았습니다.
팔십 대인지 구십 대인지 알 수 없는 그이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지만
우대석의 세 승객 중 제일 건강해 보였습니다.
그이는 앉자 마자 옆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군대는 어디로 갔다 왔어요?" "월남 갔다 왔습니다."
"아 그래? 난 6.25 참전용사야." 가운데 사람은 끝없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신이 났는지 연신 제스처를 쓰며 자꾸 저를 건드렸습니다.
마침내 그의 소음과 접촉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옆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에게서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걸어, 그저 걸어야 해.
그래야 건강해. 갈수록 세상 살기가 좋아지는데 오래오래 살아야지.
오래 살려면 건강해야 해. 뭣보담 많이 걸어. 걸어야 건강해."
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 말을 들으니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 얼마나 오래 세상을 시끄럽게 하려고!'
젊은이들의 수다도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노인들의 수다는 한숨을 자아냅니다.
노인들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건 외로움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외로움은 인간의 조건입니다.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혼자 있을 때(aloneness) 외로움(loneliness)을 느끼는가
고독(solitude)을 즐기는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외로움(loneliness)은 누군가가 함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상태고
고독(solitude)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상태라고 하지요.
노년은 혼자 있음을 받아들이고 고독을 즐기는 시기입니다.
홀로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렇지 않게 떠날 수 있으려면
홀로 잘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수다보다 침묵이 아름답고, 건강한 노인보다
침묵하는 노인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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