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정경화, 승효상 그리고 최열(2019년 6월 23일)

divicom 2019. 6. 23. 10:38

친한 사람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존경하기가 더 쉽다고들 합니다.

누구에게나 인간적 허물이 있고 가까이 접하게 되면 그 허물을 보게 되니

존경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존경에 인색한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아무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뛰어난 점이 있습니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 능력을 가진 사람, 성격이 원만한 사람,

웃음을 주는 사람... 세상에 존경할 사람은 많습니다.


정경화, 승효상, 최열. 이 세 분은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쌓은 분들인데, 이분들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였다고 합니다. 무슨 일일까요?

답은 존경하는 김수종 선배님이 내일신문에 쓰신 칼럼에 있습니다.



[김수종 칼럼] 정경화, 승효상 그리고 최열

2019-06-10 12:46:49 게재


5일은 ‘세계환경의 날’이었다. 1972년 6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UN인간환경회의가 개막된 것을 계기로 1974년부터 매년 이날을 기린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창원에서 열린 환경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수소버스 보급 정책에 대해 연설했다.


이날 저녁 나는 예기치 않게 서울 혜화동 JCC아트센터에서 열린 정경화 바이올린콘서트를 들었다. 정경화는 바흐와 브람스를 연주하고 참가자들의 앙코르 요청에 두 곡을 더 선사했다. 가까이서 정경화의 연주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다. 그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 청중에게 대화하듯 말을 건넸고 앙코르에 응답하며 “박수치는 것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그래서 여러분 봐드리는 거예요”라고 농담까지 했다.


“음악을 느낀다는 것과 직접 그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아주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환경문제를 느끼는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아마 천지차이일 것입니다. 그냥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요. 수십년을 제대로 매달려야 마음을 움직이는 음(音) 하나가 나옵니다. 평생 환경운동 한 길을 걸어온 최열 이사장님과 환경재단 사람들이 ‘글로벌 에코캠퍼스’ 짓는 일에 큰 뜻을 품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환경문제 해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곳, 꼭 만드시기 바랍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그렇다. 이날 정경화 바이올린 콘서트는 아주 특별한 목적, 즉 환경재단의 ‘글로벌 에코캠퍼스’ 건립 사업을 후원하는 연주회였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평생 연주자의 길을 걸어온 음악가로서 평생 환경운동가의 길을 걸어온 최열의 삶의 방식에 대한 공감, 즉 한길을 가는 사람은 서로 통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정경화까지 나서서 응원하는 ‘글로벌 에코 캠퍼스’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시설로 어떻게 만들 요량인가. 들어보니 최열의 40년 환경운동 활동의 실물적 완결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코캠퍼스 건립 사업 후원 연주회


1993년 환경운동연합을 창설하여 시민환경운동을 하던 최열은 2002년 환경재단을 설립했다. 미시적 국내 환경운동에서 종합적이고 글로벌한 시각에서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를 NGO, 기업, 정부의 관심을 한데 모으는 운동으로 차원을 높이려는 노력이었다. 환경재단은 환경영화제, 그린보트를 비롯하여 활동 폭을 국제영역으로 넓혔고 외국에서도 인정해주는 환경단체로 자리잡았다.


공해추방운동으로 환경운동을 시작한 최열은 응원과 비판, 즉 여러 곡절을 넘겼다. 그는 환경문제 진전과 의식변화를 반추하며 30년 후, 즉 2050년의 지구를 생각하는 민간시설을 만들 구상을 했다고 한다. 최열의 생각은 이렇다. 환경운동은 운동가들로만은 되지 않는다. 정부가 주도해서 일하면 기업은 들러리 노릇만 해서 제대로 일이 되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에코캠퍼스라고 한다.


환경에는 국경이 없다. 인구가 가장 많은 아시아의 환경문제를 풀어야 하고 그 역할은 한국 중국 일본의 민간NGO가 해야 하는데 지정학적 여건상 한국이 허브(Hub)가 되는 게 알맞다고 보고 일을 추진한다. 즉 에코캠퍼스는 탄소사회에서 재순환형 사회로 이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주제로 한 교육, 영화 등 문화예술, 기초연구와 포럼 등 싱크탱크 역할을 주도하는 아시아 환경센터로 설계된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누하동 인왕산 자락, 조선 시대 백사 이항복이 살았던 집터 352평이 에코캠퍼스 부지다. 집 짓는 일은 건축가 승효상이 맡았다. 그는 정경화 연주 직전 무대에 올라 최악의 조건에서 건축설계를 맡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부지와 건축법규가 까다롭다는 푸념을 털어놓고는 건축주를 세게 비판했다. 돈도 한 푼 없는 건축주(최열)가 이것저것 요구조건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뜻을 담은 농담일 것이다.


기후변화는 현실의 공포로 다가와


승효상은 건축가 김수근 밑에서 엄격하게 건축을 배우고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철학을 확립한 이 시대의 대표적 건축가다. 부산 피난민촌 달동네에서 사람이 어울려 살았던 공간이 그의 건축 인생을 지배했다고 한다. “건축은 반환경적”이라는 그의 말 속에 환경적 건축에 대한 고민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음악에, 건축에, 환경운동에 인생을 불태웠던 세 사람의 후원과 정성과 집념이 담긴 에코캠퍼스가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길 기대하며, 나도 벽돌 한 장을 기부해야겠다. 나는 1992년 6월 5일 브라질 리우 환경정상회의에서 청년 최열을 처음 보았다. 그땐 기후변화란 말이 무슨 공상과학소설 얘기처럼 들렸지만 27년이 흐른 지금 기후변화는 현실의 공포로 다가왔다.


에코 캠퍼스가 멋진 건축이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의 공포를 실질적으로 풀어가는 ‘해결의 집’으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