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줄리언 어산지와 언론의 자유(2019년 4월 15일)

divicom 2019. 4. 15. 17:07

엊그제 친구들과 5공화국 시절 얘기를 나누다가 울컥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저는 정치부에 있으면서 외무부(현재의 외교부)를 출입했는데

어떤 기사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외무부엔 11개 언론사의 기자들이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전두환 씨의 측근 '3허씨'중 한 사람인 허문도 씨를 배출한 조선일보의 기자는 몰라도

다른 기자들은 모두 울분에 찬 나날을 보냈습니다.


놀라운 건 언론계 바깥의 사람들은 그 시절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심하게

봉쇄되어 있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전두환 정권의 지침에 따라

방향과 크기 등 모든 것이 결정되던 시절의 기사를 읽고 들으면서도.


5공화국에 언론의 자유를 뺏기고 술독에 빠져 살던 기자들이 훗날

노무현 정부에서 무제한으로 허용해준 자유를 노무현 대통령을 거꾸러뜨리는 데

사용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 좋은 예이겠지요.


제가 이 나라 대통령 중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언론인 모두에게 부여했던 언론의 자유 때문입니다.

오늘 경향신문에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줄리언 어산지에 관한 칼럼을 읽으니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5공화국 시절이 떠오릅니다.

아래는 어산지에 관한 양권모 경향신문 논설실장의 칼럼입니다. 


[여적]어산지와 언론의 자유

양권모 논설실장 


2006년 크리스마스 직전 호주 출신의 ‘컴퓨터 귀재’ 줄리언 어산지는 “우리 계획은 인류의 창공에 새로운 별을 띄우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별’은 바로 그해 설립한 위키리크스를 말한다. 위키리크스는 내부 고발자 집단으로부터 제공받거나 자체 탐사를 통해 수집한 정부나 기업의 정보, 기밀 자료, 비공개 문서 등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을 표방했다. 출범 초부터 아프리카 연안 유독물질 투기 메모, 영국 극우파 정당 당원 명부, 스위스은행 문건 등을 공개하고 케냐 정부의 부패를 고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위키리크스는 2008년 ‘이코노미스트’가 주는 뉴미디어상을, 2009년 앰네스티로부터 미디어상을 받았다. 일찍이 새로운 ‘미디어’ 위상을 공인받은 셈이다.

‘새로운 별’로서 위키리크스는 2010년 충격적인 폭로 ‘열전’으로 세계 시민에게 각인됐다. 2010년 4월 이라크전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돼 전율을 안겼다. 이어 7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국방부 비밀문서 9만여건, 10월에는 추악한 이라크 침공의 실체가 담긴 비밀문건 39만여건이 공개됐다. 그리고 12월 전 세계 미국대사관들이 펼쳐온 갖가지 비밀활동을 담은 외교전문 25만여건이 공개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외교의 9·11테러’라 할 만큼 미국은 물론 각국 정부에 충격과 공포를 던졌다. 정보공개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진단이 나왔고, 보수적 경제지 ‘포브스’조차 “‘비자발적 투명성’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자”로 어산지를 평가했다.

‘위대한 폭로자’ 어산지가 7년간 도피 생활을 해온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에서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 그를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한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따른 체포였다. 1971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내부 고발자’ 제보를 바탕으로 베트남전 비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해 “정부기관의 비리나 비행을 폭로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언론 역사를 바꾼 판결이다. 권력의 비밀을 폭로할 권리가 있는 언론의 자유, ‘체포된’ 어산지가 다시 던지는 질문이다. 어산지의 미국 송환과 처벌 여부는 인터넷 시대 언론의 자유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4142028005&code=99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