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5.18민주항쟁을 폄훼하는 자유한국당 사람들을 보면 참 기가 막힙니다.
광주와 전라남도의 시민들이 자유한국당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말로 그들을 비난해야 하는 건 대구, 경북, 부산, 경남의 시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한국당의 본거지가 그쪽이니, 자유한국당의 망발은 그쪽 시민들을
모욕하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경향신문 박래용 논설위원이 이 문제와 관련된 칼럼을 썼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박래용 칼럼]'가장 무지한 종'
논설위원
공룡은 두 차례에 걸쳐 멸종했다. 첫번째 멸종은 6600만년 전 인도 데칸고원에서 발생한 초대형 화산 폭발로부터 시작됐다. 화산재와 온실가스가 지속되며 공룡 24종 가운데 10종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15만년 후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 나머지 모든 공룡도 사라졌다. 공룡은 화산폭발과 소행성 충돌이라는 원투 펀치를 맞고 멸종했다.
자유한국당은 2016년 총선에서 졌다. 제1당을 빼앗긴 충격은 컸지만 122 대 123석, 의석은 불과 한 석 차이였다. 멸종까지는 아니었다. 박근혜 탄핵은 화산 대폭발에 비견할 만하다. 그 여파로 한국당은 정권을 넘겨주고 다음 지방선거도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의 3연속 패배는 보수정당 사상 처음이다. 여의도와 중앙에 이어 지방권력까지 넘어가며 권력 주류는 완전히 바뀌었다. 공룡처럼 군림했던 보수정당의 1차 멸종이다.
그런 한국당이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꺼진 박근혜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번째는 전대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당 대표 선거는 일반 시민 대상 여론조사(30%)에 책임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70%)로 이뤄진다. 2017년 7·3 전당대회 당시 16만명이었던 책임당원은 현재 34만여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태극기부대를 포함한 극우세력이 대거 입당원서를 써냈기 때문이다. 책임당원 중 절반이 TK(대구·경북)를 비롯한 영남이다. 이들은 ‘박근혜 광팬’들이다. 이들을 잡지 않고서는 선거에 이길 수 없다. 그래서 구미의 박정희 생가, TK는 후보들의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전국의 15%에 불과한 TK 표심은 한국당에서 과대 대표되고 있다. 노년층의 ‘박근혜 셀러브리티(유명인)’ 심리를 자극하는 건 다음으로 중요한 선거전략이다.
교도소 안의 박근혜는 이를 잘 알고 있다. TK와 노년층은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존재감을 다시 보여줄 때가 왔다. 박근혜를 유일하게 접견하는 변호사는 “허락을 받았다”며 방송에 나와 메시지를 전했다. 황교안은 친박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깜짝 놀랐다. 2017년 3월 수감된 이후 678일 만에 나온 첫 메시지다. 사람들은 그 이유가 독방에 책상과 의자를 넣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데 더욱 놀랐다. 옥중의 박근혜에겐 우주와 혼만큼 책걸상이 가장 큰 현안이요, 감방 내 비정상의 정상화가 중요했던 것 같다. 박근혜는 제1야당의 리더를 뽑는 데 비전도 가치도 아닌, 책걸상을 중대 변수로 만들었다. 박근혜 지지층은 책걸상과 황교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대혼돈에 빠져들었다.
두번째는 민심의 변화다. 민주당과 한국당 간 지지율 격차는 10%포인트로 바짝 좁혀졌다. 이만큼 근접한 격차는 탄핵 후 처음이다. 그동안 금기어나 다름없던 ‘박근혜’ 이름 석자를 꺼내고, 석방론을 주장하는 것도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떠난 홍준표는 “내가 옳았다”고 돌아왔다. 탄핵 총리 황교안은 “나는 국정농단과 무관하다”며 뛰어들었다. 염치도 도의도 없지만 그 동네에선 상관없다. 5·18망언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도 살 만해지니까 나온 얘기다. 한쪽의 표를 얻기 위해 다른 한쪽을 희생시키는 저급한 정치다.
한국당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은 건 위장이었다. 개혁하고 쇄신하며 미래로 나아가기는커녕 친박·비박 대결 정치, 정부 발목잡기, 수구적 태도 그대로다. 지금 한국당 지지율 상승은 여권의 잇단 악재에 따른 어부지리지, 한국당이 잘해서 올라간 게 아니다. 한데도 폐족 위기에 몰렸던 친박은 책임도 반성도 사과도 없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 ‘쓸모없는 선물’ 교환 1위가 한국당 입당원서라고 한다. 2G폰 충전기, 폐타이어를 제쳤다.
지구에 ‘거대한 멸종’이 일어난 건 온난화 때문이었다. 지구 평균 온도가 최대 11도 상승했다. 그 결과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소멸했다. 과학자들은 이를 50억년 지구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꼽는다. 이 논문을 발표한 커티스 도이치 워싱턴대 교수는 “인류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지구 역사상 가장 무지한 종(種)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보수야당이 과거와 일획을 긋고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 거듭 나기를 시민들은 바랐다. 하지만 친박이 한국당을 해체 수준으로 재창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수구적 이념, 노선, 가치, 인물을 바꾼다는 것도 기대 난망이다. 그렇다면 죽는 수밖에 없다. 2020년 총선은 또 한번 심판의 장이 될 것이다. 한국당은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무지한 종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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