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SKY 캐슬'과 한자(2019년 1월 10일)

divicom 2019. 1. 10. 12:00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참 많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네 고민이 뭔지 구체적으로 말해봐'라고 할 때

이 말에 나오는 '고민'과 '구체적'은 한자어입니다.


한자어 없이 순수한 한국어로만 말하거나 글을 써야 한다면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쓰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한자는 쓰지 말고 한글을 전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교실에서 한자는 사라지고 영어가 국어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자 교육이 꼭 다시 부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수없이 많은 한자어를 사용하면서 한자를 모르고 가르치지 않는 것도 이상하려니와 

소리글자인 한글과 뜻글자인 한자를 함께 쓰는 것은 언어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지성을 연마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어제 경향신문에서 읽은 송혁기 교수의 관련 글을 옮겨둡니다. 


*사족: 가끔 'SKY 캐슬'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이 블로그를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캐슬은 '성(城)'을 뜻하는 영어 단어 'castle'이고

        SKY는 '하늘'을 뜻하는 영어 단어이거나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의 영문 명칭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것으로

        소위 일류대학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송혁기의 책상물림]마천과 여주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최상류층 저택 단지에서 입시를 두고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드라마 <SKY 캐슬>이 화제다. 과장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게 바로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 드라마의 웃음 코드 가운데 하나는, 잘나가는 대학병원 의사이면서 허당 기질이 다분한 정준호 분 강준상 교수의 행태다. 나의 전공 탓이겠지만,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다. 미리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서 국회의원의 환심을 사려던 강 교수가 한자로 적힌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를 마천 신혁사로 잘못 읽는 해프닝이다.

그러나 ‘驪’와 ‘勒’을 쉽게 읽을 수 없는 시청자라면 그냥 웃어넘기기엔 뭔가 찜찜하다. 한글로 쓰면 될 것을 굳이 한자로 써서 망신을 주는 설정이 와 닿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강 교수의 볼멘 항변에 공감이 간다. “저희 땐 한자를 안 배웠습니다. 학력고사 과목에 없었거든요.” 학력고사 전국 1등의 수재라 하더라도, 대학 입시와 상관없는 내용은 몰라도 당당한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국권을 빼앗기고 타의에 강제된 근대화를 겪으면서 한문으로 표기된 전근대 문물은 부정의 대상이었고, 이는 해방 이후 한글 전용의 전격 시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한문 교육은 여전히 필요하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한문 교육의 의의와 내용이 실려 있고, 이를 흥미롭게 구현한 교과서들이 나와 있으며, 전공 교육을 충실히 받은 교사들이 양성되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의 한문 교육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대학 입시에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글 전용이 세대를 넘긴 지금, 한문 교육이 우리의 민족 자존감을 무너뜨리거나 전근대적 가치관으로 회귀시킬 것이라 우려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는 동아시아의 일국으로서 어휘 및 문화 교육의 측면에서 한문 교육의 실용성이 다시 부각되는 시대다. 교육과정의 선택과목 체계에서 한문과의 위상을 재배치하고, 대학 입시에 편중되는 중·고등학교 시수 편성을 정상화하는 원칙 수립이 시급하다. 대학들도 온전한 고등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한문 실력을 입시 전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교육이 철학과 비전 없이 방향성 없는 경쟁으로만 치닫다 보면, 여주를 마천으로 읽는 실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더 큰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1082038025&code=990100#csidxbc3ec75ebe74777a863e5c5091cdaf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