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2018년을 보내는 어르신의 소회(2018년 12월 21일)

divicom 2018. 12. 21. 16:20

언론계 선배이신 황경춘 선생님은 말씀 대신 삶으로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구십 대 중반에도 여전히 자유칼럼에 후학들이 쓰지 못하는 칼럼을 쓰십니다.

선생님이 내년에도 건강하신 모습으로 어리석은 저희들을 깨우쳐 주시길 빌며

아래에 선생님의 글을 옮겨둡니다.


황경춘 선생님, 감사합니다!

 

www.freecolumn.co.kr

 2018년을 보내며

2018.12.19

국내외로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달력상으로 해가 바뀐다 해서 우리의 생활에 변화가 곧 찾아올 리는 없겠지만, 새해에 새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빌어 봅니다.

오랜만에 남과 북, 두 정상이 세 차례나 만나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공존을 다짐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어렵게 만나 한반도의 평화 조성에 대한 희망을 부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속조치가 쉽게 진행되지 않아 다시 우리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불법 이민자’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국내에 이미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조사뿐 아니라 멕시코와의 국경에 몰려든 3천~4천 명의 남미 경제파탄 국가로부터의 새로운 이민 희망자와 총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또 경제 분쟁을 시작하여 온 세계를 경제공황의 악몽에 시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한때 사회주의 복지정책의 단꿈에 취해 있던 남미 여러 나라의 경제가 악화하여 정세를 더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철권통치로 알려진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 조끼’ 시민 시위대의 대규모 시위에 백기를 들었으나 소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집권을 계속하고 있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지방선거에 패배하여 당수직에서 물러나고, 영국의 메이 여 총리는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 정책의 원만한 마무리 수습에 실패하여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밖에, 계속되는 중동 분쟁,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재연시킨 크리미아반도 분쟁, 언론인 암살로 인한 사우디와 터키의 분규 등 전 세계가 전운(戰雲)과 불안에 휩싸인 2018년은 저 개인적으로도 액운의 한 해였습니다.

집사람이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였을 뿐 아니라 비교적 건강했던 지난해와 달리 2018년에는 예기치 않은 건강문제가 연속적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런 믿기 어려운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습관대로 그날 일기를 적기 시작할 때 일입니다.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돌연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다가 결국 아침 신문을 펴 그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치매의 전조가 아닌가 걱정되어, 70여 년 전 영문타자를 배울 때 쓰던 영문 문장을 암송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자주 사용한 두 짧은 문장은 쉽게 암송할 수 있어 안심했습니다.

식욕을 빼고 신체의 모든 기능이 1년 사이에 현저히 저하되었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고는 외출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신체 기능의 빠른 변화와 집사람을 잃은 슬픔에 한때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기도 했으나, 남은 가족의 헌신적 도움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90줄의 절반 반환점 가까이 온 저로서는 여생에 대한 미련은 없습니다. 다만 남은 가족과 친지들의 정성에 보답하고, 폐를 적게 끼치고 편안하게 살다가 집사람처럼 고통 없이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생각뿐입니다. 이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꿈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불필요한 연명조치 거절을 나라가 법으로 허용하게 되어, 저도 의사 표명을 문서로 남길 생각입니다. 일부 아이들과는 사전 합의를 이미 했습니다.

며칠 전, 일본에서 우편소포가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제가 잠깐 다닌 대학의 학생 동아리가 제작한 ‘조선인 학생도 전쟁에 이렇게 징발됐다’는 테마로 만든 기록영상물 두 편을 보내온 것입니다. 이 작업을 위해 지난 3년 여름휴가 때마다 찾아와 취재를 해 간 학생들의 작품입니다.

아이들과 그 영상물 시사회를 가지면서, 짧은 일본군 생활이지만 그때 이미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신병 훈련을 마친 뒤, 오키나와나 남방 등 격전지에 배치되지 않고 후방인 일본 본토에 배치된 것, 그곳에서 근무 중 몇 번 있었던 아슬아슬한 연합군 비행기의 기총소사(機銃掃射)에 희생되지 않은 것 등 참으로 아슬아슬한 경우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본 패전 후 귀국 길에 수송선 배치 계획이 불투명하여 귀향심에 불타는 마음으로 일본인 소형 어선을 전세 내어 미군이 부설한 기뢰가 아직도 떠다니고 태풍 계절로 파도가 높아 위험한 현해탄을 건너 구사일생으로 부산에 도착한 것도 기적과 같은 행운이었습니다. 광복 후 한국전쟁을 비롯하여 4·19 학생 혁명 취재 등 여러 번 생사의 고비를 넘긴 것도 생각났습니다.

2008년 1월에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자유칼럼 그룹의 금년도 송년회에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싣고 참석했습니다. 두 아이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가능했던 좀 무리한 모험이었습니다. 다행히 동료 필진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어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10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춘추의 소풍에 금년에는 한 번도 참가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이렇게나마 풀어보자고 무리를 한 것입니다.

비록 몸은 불편해도 정신은 아직 동행할 만하니 새해에도 열심히 글쓰기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는 날까지 조용한 마음으로 매일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늘이 도와주기를 희망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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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