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기능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만나게 해 준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책을 읽지 않는 오늘의 한국인에게 글쓰기는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자연히 자신을 만날 기회도 드물고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누구인지 영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책 읽고 글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많이 다를 겁니다.
무엇보다 에너지와 시간의 낭비를 덜할 테니까요.
아래는 오늘 경향신문에 이문재 시인이 쓴 글입니다.
'무엇을 먹는지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You are what you eat.)'는 말처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를 분석해보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있겠지요.
이문재 교수는 '무엇을 먹는가' 기록하게 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을 들여다보고 사회 문제를 통찰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문재 교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참 운이 좋습니다!
대학교 교실에서 이 교수의 제자가 되지 못한 사람도
매일 자신이 먹는 음식을 기록해 '식습관 분석 활동'을 하다 보면
이 교수의 학교 제자들만큼 깨닫는 게 있지 않을까요?
[이문재의 시의 마음]글쓰기에서 ‘밥상’을 주목하는 이유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충격, 각성, 전환. 첫 학기가 끝나가는 6월 중순이면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단어다. 십대의 대부분을 입시 지옥에서 허덕여온 대학 새내기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닌가라고 자문할 때도 있다. 경쟁이 유전자에 박힌 학생들에게 모둠 활동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시도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상대평가와 서열화를 그대로 두고 무슨 교양교육, 시민교육이냐는 비판도 여전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법과 제도를 탓한다고 해서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학생들의 식습관을 조사 분석해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기초글쓰기 교과에서 웬 음식 이야기냐고 의아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글쓰기는 1학년 때 이수해야 하는 기초(‘나를 위한 글쓰기’)와 2학년 때 듣는 심화(‘대학 글쓰기’)로 이원화돼 있다.
기초글쓰기 역시 둘로 나뉜다. 중간고사 전까지 자기를 성찰하는 글을 쓰고 기말고사 전까지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글을 쓴다. 한 학기 동안 A4 한 장 내외의 에세이를 6~7편 쓰는데 매번 주제가 제시된다. 생애 최고의 순간, 잊을 수 없는 장소와 같은 테마를 붙잡고 지나온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이어 학생들의 시야는 한국사회의 문제점, 우리가 원하는 미래로 확대된다. 자기성찰 글쓰기가 감정 표현에 비중을 둔다면 학기 후반부 사회적 글쓰기는 관점과 논리를 강조한다.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고교에서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르칠 선생님이 없다. 글쓰기를 전공한 교사도 없고 전문적인 양성 프로그램도 없다. 둘째는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그래서 문해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바닥 수준이다. 글쓰기에 관한 한 유리한 환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하나 있다. 학생들이 ‘나쁜 글쓰기 습관’에 전혀 물들지 않았다는 것!
기초글쓰기는 전략과 기술을 우선하지 않는다.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를 스스로 끌어냄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일차 목표다. 학생들은 자기 안에 쌓여 있는 많은 이야기와 직면하면서 놀라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관계의 (재)발견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자기를 성찰하는 글을 쓰면서 관계의 주체로 거듭나는 학생들의 내면에는 조금씩 자존감이 고인다. 이때쯤이면 얼굴빛이 바뀌고 서로 친밀해진다.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식습관 분석 활동의 정식 명칭은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음식과 산업문명’. 기말고사 3주 전에 조별 활동에 들어간다. 첫 주에는 일주일간 자신이 먹는 음식을 모두 기록해 식습관 패턴을 확인하도록 한다. 학생들의 식습관은 별 차이가 없다. 집에서 다니거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은 큰 문제가 없지만 자취생들은 열악하다. 채소와 과일을 가까이하지 못한다. 대다수 학생들이 육류와 밀가루 음식을 선호하고 커피를 즐겨 마신다. 참, 술도 많이 마신다.
둘째 주에는 조별로 닭, 돼지, 밀, 커피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 가공되고 또 어떻게 유통, 소비되는지를 조사 분석한다. 이때 몇 가지 주문을 한다. 반드시 관련 저역서와 논문, 대중매체를 참고하라고 한다. 셋째 주에 조별로 조사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다. 조별 발표가 끝나면 각자 주제를 정해 에세이를 써서 제출한다. 학생들의 글은 충격과 분노를 거쳐 반성과 각오로 귀결된다.
가령 닭의 평균수명이 10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며, 그런 닭을 불과 5주 만에 잡는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닭이 스트레스를 못 이겨 옆에 있는 닭을 쪼아대기 때문에 부리를 자른다며, 닭이 A4 한 장 크기의 케이지에서 ‘평생’을 보낸다며 분노한다. 우리나라 연간 닭 소비량이 1인당 20마리에 달한다며 “덜 먹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좌절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스스로 ‘인간 닭’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고 사회의 이면을 파악하는 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자기가 먹는 음식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읽어낸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지구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목격한다. 우리 몸이 왜, 어떻게 시장전체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동물복지, 유기농, 협동조합, 공정무역, 식량주권 등 다양한 대안을 내놓는다.
나는 학생들의 분노가 곧장 삶의 방식의 전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섣불리 낙관하지 않는다. 기업이 생산력 제일주의를 스스로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가(들)와 (국제)정치가 대오각성해 지속가능성을 정책 제1순위에 올려놓을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시민으로 거듭난다면 달라질 수 있다. 시민의 목소리가 커지면 바뀐다. 촛불이 그랬듯이.
나는 식습관 분석 활동이 모든 학교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매일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산업문명의 ‘뿌리’를 미래세대가 마주하길 바란다. 우리 몸으로 무엇이, 어떻게, 왜 들어오는지 알게 된다면 전환이 가능하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라고 물어보자. 생각하고 표현하는 시민, 이웃과 함께 지금과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시민은 그때 탄생할 것이다. 멀리 가지 말자. 식탁에서, 교실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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