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정원에서 보낸 하루(2018년 6월 9일)

divicom 2018. 6. 9. 07:23

저는 행운아입니다. 몸은 약해도 정신은 강한 편이고 돈은 없어도 운은 좋은 편입니다.

무엇보다 제 주변엔 존경할 만한 사람이 많습니다. 저보다 젊은이도 있고 제 또래도 있고 

선배도 있는데, 특히 훌륭한 선배 덕에 행복할 때가 많습니다.


어젠 종일 그런 선배 댁에서 놀았습니다.

선배가 정성껏 준비해두신 커피와 차를 마셨습니다.

선배가 내놓은 과일과 케익은 화가의 파레트처럼 색이 가득한데다 맛이 좋았습니다.


정원 테라스에 앉아 처음으로 마셔본 '버터플라이 피 플라워 티(butterfly pea flower tea)'는 

경이로웠습니다. 나비콩의 담청색 꽃으로 만든 카페인 없는 허브차.

투명한 유리 주전자에서 우린 차를 역시 투명한 유리잔에 따르니 옅은 잉크빛인데

거기에 레몬즙을 첨가하니 금세 보라빛으로 변했습니다.

차의 빛깔이 순간에 변하듯 우리도 그 아름답고 향기로운 차 한 모금에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정원을 채운 색색 꽃들과 나무들의 합창을 보고 들으니 

소음에 시달린 귀와, 삭막하고 천박한 풍경에 지친 눈이 절로 편해지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 

지상에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함께 간 친구들은 꽃과, 꽃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바빴습니다.

한 친구가 수레국화 세 송이를 꺾어 가도 되느냐고 하자 선배는 "아유, 그럼요!" 하며 허락했습니다.

친구가 세 송이를 꺾자 선배는 꺾인 부분을 젖은 휴지로 싸고 또 무엇으로 싸서 꽃이 마르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모르던 꽃 이름도 배웠습니다.

'여우장갑(foxglove: Digitalis)'은 이름은 재미있고 꽃은 앙증맞고 화려했습니다.


이십여 년 우정 덕에 눈과 귀와 허파까지 호강한 하루였습니다.  

선배님은 앞으로 몇 년 더 우리들을 초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연세가 들어가시니 정원 가꾸기가 점차 힘에 부치고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는 것도 힘겨우시겠지요.


이정자 선배님, 감사합니다.

꽃도 좋지만 무리하진 마세요. 

저희에겐 꽃보다 선배님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