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리석은 구청장 후보(2018년 6월 7일)

divicom 2018. 6. 7. 21:00

제가 사는 아파트는 세대 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각 동에는 대표가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대표들이 모여 아파트 살림을 의논합니다.


드물긴 하지만 정치인들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선거가 있을 때 표를 달라고 아는 척을 하는 것이지요.


조금 전에 열린 동대표회의에도 이번에 출마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구청장후보인데 현재의 구청장이 너무 오래 했으니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바닥에 엎드려 큰절까지 하고 갔고, 또 한 사람은 시의원 후보인데 자신이 이 동네에서 자랐다며

자신이 당선되면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느냐'고 친한 척을 했습니다.


큰절을 하거나 친한 척을 한다고 찍지 않을 표를 찍을 사람은 없겠지만

인사를 받은 대표들은 박수로 답해 주고

그 다음 손님을 기다리며 회의를 했습니다.


그 다음 손님은 현직 구청장으로 세 번 연임에 도전하는 후보인데

오늘 동대표회의에 인사를 오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회의 도중 동대표회의 회장에게 그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거전략회의가 있어서 못 오겠다는 겁니다.


회의를 하던 동 대표들은 모두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두 번 연임하더니 보이는 게 없나 보네,"

"그렇지 않아도 언젠부턴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더라,"

비판의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저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약속을 했다가 지키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그럴듯한 사유를 대거나 

말이 되는 변명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기네가 오겠다고 했다가

못 오겠다는 것도 우습고, 무슨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선거전략회의를 하느라 못 온다니 황당했습니다.


우리 아파트 동 대표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구청장 선거에 관한 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이번엔 안 찍겠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 후보가 온다고 했다가 오지 않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우리 아파트의 주민이 적으니 표도 적어 굳이 방문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건지,

이번에도 당선될 게 확실해서 지지를 호소할 필요가 없는 건지,

동 대표들보다 중요한 사람(들)과 갑자기 만나게 되었는지... 


이유야 어떻든 제가 보기에 그 후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우리 아파트 동 대표 누구도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았을 텐데

괜히 온다고 했다가 취소함으로써 표만 떨어졌으니까요.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