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채식, 사피엔스, 총 균 쇠(2017년 10월 21일)

divicom 2017. 10. 21. 17:16

원래 육식을 즐기지 않는데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채소와 곡류만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니 

밥상이 풀밭일 때가 많습니다. 대개 채소가 위주인 밥상은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밥상보다 아름답습니다. 

채소의 다양한 색깔이 그대로 밥상의 색깔이 되니까요.


여러 나라에서 싼 고기가 수입되면서 '00고기 무한리필'을 내건 식당들이 많아졌지만,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채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아래 허찬국 교수의 글은 지난 9월 20일에 자유칼럼에서 보내준 글이지만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어 늦게나마 여기에 옮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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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생각하게 하는 「사피엔스」

2017.09.20

이번 여름 일 년 넘게 미루어 오던 유발 하라리의「사피엔스」를 읽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독후감은 육식을 줄여야겠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크게 변화시킨 농업혁명(BC 9000년 전후) 이후 본격화된 동물의 가축화가 동물들에게는 큰 재앙이라는 하라리의 설명에 공감하며 드는 생각입니다.  

십여 년 전 같은 장르의 책(재러드 다이아몬드 著)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를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 책에 기대가 컸습니다. 「총, 균, 쇠」의 원래 부제(副題)는 ‘인간 사회의 운명(The Fates of Human Societies)’, 「사피엔스」의 부제는 ‘간추린 인류사(A Brief History of Humankind)’인데,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내용이 많아 책이 두껍습니다. 영문 페이퍼백 기준 다이아몬드의 책(Norton 출판사 刊)은 약 480쪽, 하라리 책(Vintage 출판사 刊)은 약 500쪽입니다. 

두 저서 모두 인문학, 사회 및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 연구의 결과이지만 책의 내용은 저자의 배경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파푸아뉴기니의 조류를 오랫동안 연구했던 자연과학 배경의 다이아몬드와 달리 하라리는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전자는 다른 지역에서 발현된 문명들의 변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지리적 조건과, 동식물 분포와 같은 생태학적 차이를 강조합니다. 후자는 문명 간 차이보다는 공통적인, 광범위한 인류 역사의 흐름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다루는 내용도 광범위합니다. 화폐의 등장, 주식회사 등 경제 관련 내용도 적지 않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농업혁명이 지역(대륙)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으며 이는 훗날 인류 불평등 발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초기 조건이었다는 해석에 그치는 데 반해, 하라리는 농업혁명 전후의 삶의 질을 비교하며 인류의 후생을 증진하는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한마디로 죽도록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여러 이유로 지구상에 가축화에 적합한 큰 동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후보 초식(또는 잡식)동물의 종류는 148개인데 개, 양, 염소, 돼지, 소 등 14개만이 가축화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농업혁명이 시작된 지중해 북동부 내륙지역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에 서식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이 전체 동물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지요. 

하라리는 그 이후의 엄청난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 약 70억 명의 전체 무게가 약 3억 톤입니다. 그런데 가축들을 다 합친 무게는 약 7억 톤이나 됩니다. 이에 비해 야생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을 다 합쳐도 1억 톤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약 만 년 전 대략 몇 백만 마리였던 가축들의 수가 지금은 양과 돼지가 각각 10억, 소가 15억, 닭이 250억 마리나 된다고 합니다.

축산업자로서는 인류의 성공 신화가 될지 몰라도 해당 동물들에게는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공포영화 같은 생태계를 의미합니다. 순전히 시간과 비용을 덜 들이고 식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인간에 의해 부단히 ‘개량’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인구 급증에 비례해 가축 수가 느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가축에 대한 잔혹행위는 다른 이슈입니다. 

이번 여름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산란계 양계장의 잔혹한 실태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계란은 도축 없이 지속적으로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단백질 원천이어서 의미가 큽니다. 시골 텃밭에서 기르는 닭을 잡으려고 쫓아다녀 본 사람은 이들의 활동성을 잘 알지요. 그런 닭들을 손바닥만 한 철망에 가두어 놓고 조악한 사료를 먹이며 알 낳는 공장 기계처럼 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된 진드기 구제를 위해 살충제로 목욕을 시키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월 28일 신아연, 9월 7일 방재욱 칼럼 참조) 

8월 말 유럽을 가게 되어 그곳 사정을 좀 살펴보았습니다. 유럽연합(EU)은 2012년에 이미 넓은 닭장을 의무화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근래 비슷한 규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옆 닭과 날개가 닿지 말아야 한다든지, 닭이 서서 움직일 수 있고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든지 요건이 강화되었지만 아직도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영국의 슈퍼마켓 세인즈버리(Sainsbury’s) 달걀 매장에서 찍은 것인데 이 회사는 닭장 산란계 달걀을 아예 취급하지 않습니다. 사육장 계란 사진 속 포장의 왼편에 보면 ‘(never from caged hens)’라고 닭장 계란을 사용하지 않고 있음을 명확히 밝힙니다. 판매하는 계란의 반 이상이 왼쪽 사진 속 초록색 포장인 프리 레인지, 즉, 수시로 사용할 수 있는 일정규모 이상의 야외 공간을 확보한 농장에서 사육되는 닭에서 얻어진 달걀입니다.

오른쪽 사진의 사육장(barn) 계란은 충분한 조건의 공간이 확보된 실내에서 키운 닭이 낳은 것입니다.  프리 레인지 달걀의 가격은 6개들이가 0.85 파운드(약 1,280원)로 한국보다 쌌습니다. 사육장 계란은 약 5%쯤 더 저렴했습니다. 영국에 이어 들른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도 슈퍼마켓에서 살폈는데 분류 방식, 가격 등이 비슷해 보였습니다. 

가축肉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빌 게이츠가 2009년에 설립된 ‘Beyond Meat’라는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회사의 주요 투자자인 것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회사의 제품이 2013년부터 미국 전역의 ‘Whole Food’ 슈퍼마켓 체인 등에서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도 조만간 이런 제품이 보급되었으면 합니다. 

한국은 소득수준이 일부 EU국가들보다 높은 선진국인데 왜 EU 소비자들처럼 양질의 조건에서 얻어진 달걀을 먹을 수 없을까요? 큰길에서 한 번씩 보이는, 허름한 철망이 터질 듯 닭을 싣고 다니는 운반 차량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발 내가 사는 곳 반경 오백 미터 안에 세 개나 되는 보신탕집들이 빨리 전업했으면 하고 빌어 봅니다.

* 사진의 각 포장의 오른쪽에 찍힌 RSPCA 표시는 계란의 품질을 보장하는 1824년에 설립된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against Animals)의 마크임. 동물 구호와 보호를 주로 수행하며 기부에 의존하는 협회의 2012년 수입이 약 1.3억 파운드(약 2천억 원)이며 수많은 지부,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어 있고, 영국 여왕/왕이 후견인인 민간단체. 품질 인증에 대한 신뢰도는 우리의 정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보다 높다고 생각됨.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