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사랑, 그리고 마무리 (2009년 8월 26일)

divicom 2009. 10. 31. 11:49

2009년 1월 11일(남편의 일기):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8월 20일(아내의 편지):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시게 할 겁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변치 않는 사랑-

 

아시다시피 위의 ‘남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고 ‘아내’는 이희호 여사입니다. 저는 두 분을 만난 적이 없지만 책에서 만난 두 분을 어떤 은사보다 존경합니다. 그래서 대통령, 여사 하는 호칭보다 ‘선생님’이라 부르길 좋아합니다. 두 분은 각기 한반도의 평화와 여성 지위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세계적 인정을 받았지만, 제가 그 분들을 존경하는 건 두 분이 서로에게 보인 변치 않는 사랑 때문입니다. 감옥의 김선생이 이선생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합니다. 이선생이 옥중과 병상의 남편을 위해 손수 한복을 짓고 장갑을 뜨개질한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결혼은 감정적 무장해제를 뜻하는 일이 많아, 집은 일탈과 퇴행의 공간이 되는 일이 잦습니다. 밖에서는 교양인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배우자를 막 대하고, 남에겐 결코 하지 않을 심한 말을 배우자에게 쏘아대는 일도 흔합니다. 다른 연령층의 이혼은 줄고 있는데 소위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건 긴 결혼 기간 동안 쌓인 불만과 분노의 탓이 큽니다.

 

남편은 아내가 무섭다며 밖으로 돌고, 아내는 남편에게서 찾지 못하는 보람을 자녀에게서 찾으려 과도한 관심을 쏟습니다. 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지고 매식 덕에 덩치만 큰 아이들은 젓가락질도 배우지 못한 채 6·25도 5·18도 모르는 상식 결여자로 자랍니다. 외국인 친구가 “한국 사람들은 가족끼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드문데 왜 그렇게 큰 집을 사고 싶어 하느냐?”고 묻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김 선생은 평생 단 두 번 결혼식을 주례했는데 1997년 4월 배우 오정해 씨의 결혼식에서 행한 주례사가 유명합니다. 부부는 상대방의 기를 살려줘야 하고,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간적 성장과 일에서도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상대가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려 할 때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부부가 도덕적으로 떳떳하게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그 두 사람의 사랑은 물론 가정이 행복해지고, 자식들도 부모를 존경하며, 이를 통해서 가정 전체가 단합된 모습을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도덕적으로 떳떳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바보 취급을 당합니다. 가정에선 떳떳한 삶 대신 어떻게든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행복은 자꾸 멀어지고 자식들은 부모를 경원하며 가족 간의 단합과 존경은 책 속의 얘기가 되어갑니다.

 

-하느님과 하나님-

 

이 글의 첫 두 문단에서 보듯 한 분의 ‘하느님’은 다른 분의 ‘하나님’입니다. 두 분의 종교는 47년 전 결혼 당시부터 엊그제 사별의 순간까지 달랐지만, 그 다름이 사랑과 존경을 방해한 적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부와, 부부가 되려 하는 사람들이 두 분의 동행에서 배우기를 바랍니다. 우연과 필연 이 맺어준 부부의 연(緣)에 감사하며, 서로의 같음을 바다로 보고 다름을 물거품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둘이 함께 양심을 돛 삼아 항해하다가 마침내 닻을 내릴 때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행복하게 토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