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배고픈 추석 (2009년 10월 6일)

divicom 2009. 10. 31. 11:57

추석 명절 덩두렷한 달을 보며 저 달로 허기를 채우는 사람은 없을까 생각한 게 저 하나일까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은 반갑고, 여럿이 모여 빚은 송편은 맛있지만,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떠드는 텔레비전 추석특집들이 오히려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보고 싶은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 먹고 싶은 송편을 먹지 못한 아이들의 슬픔이 가중될 것 같았습니다.

 

-거꾸로 가는 경기도의회-

 

어른들의 배고픔도 그들만을 탓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굶주리는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나잇살이 부끄럽습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1,660만 가구 중 3퍼센트에 해당하는 54만 가구의 작년 수입은 월 20만원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49만 845원, 2인 가구 83만 5,763원. 최저생계비 이하를 버는 절대빈곤층의 5분의 1은 끼니를 거릅니다. 학교급식비를 지원 받아야 할 저소득층 자녀는 2006년 52만 6천여 명에서 올해 73만여 명으로 증가하고, 급식비를 내야 하는데 내지 못한 학생들의 수는 거의 두 배나 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급식을 늘리긴커녕 중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놀랍습니다.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7월 도교육청이 상정한 2차 추경예산안에서 초등학생 무상급식 지원 예산 85억 원 전액을 삭감했습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무상급식 예산 삭감과 도청 내 교육국 설치와 관련해 경기도의원 5명과 도청 공무원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부르자, 도의회 의원 9명이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증인 출석 요구가 “지방의회의 의결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나아가 지방자치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폭력”이라고 주장했지만, 동의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거꾸로 가는 건 경기도의회만이 아닙니다. 교사 김호정 씨는 최근 모 신문에 서울 남부교육청을 비난하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급식비 지원 대상엔 기초수급자와 한 부모가정 자녀, 지역건강보험료 2만 9천원 미만 납부 가정 자녀 외에, 담임교사 추천을 받은 학생들이 포함되는데, 추천 학생 수가 초과되었다며 남부교육청이 담당교사들과 교장들을 징계하고 초과된 13개 학교 300여명의 급식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는 겁니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초·중학생의 무상급식을 위해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고등학생이 제외된 건 안타깝습니다. 급식비를 연체한 학생들 중에서도 고등학생 연체자 수가 가장 가파르게 늘고 있으니까요. 2006년 8,365명이던 초등학생 연체자 수는 2008년 10,887명으로 늘고, 중학생은 4,088명에서 7,469명으로 늘었지만, 고등학생은 4,500명에서 13,552명으로 3배나 늘었습니다.

 

-체납 세금으로 무상급식을-

 

예산이 없어 무상급식을 하지 못하는 거라면 고액 국세체납자들로부터 밀린 세금을 거둬들이면 됩니다. 최근 5년간 세금을 10억 원 이상 체납한 고액 체납자 4,426명의 체납액은 18조에 육박하고, 5천만 원 이상 체납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니 말입니다.

 

지난 4월 초를 기준으로 유치원과 초·중·고교에 다니는 우리나라 학생 수는 작년보다 17만 명이 줄었고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겁니다. 올 1월에서 7월까지 태어난 아기의 수만 보아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1만 2,800명이나 감소했으니까요. 출산을 독려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준다, 육아 지원금을 준다, 요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왜 태어난 아이들의 배고픔은 해결하지 못하는지, 먹이지도 못할 아이들을 왜 그렇게 낳으라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쌀 풍년으로 농민의 시름이 깊어가는 이 가을, 부디 청소년들이 양껏 먹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어른들의 나잇살이 부끄럽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