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난 적이 없지만 늘 그에게 감사합니다.
그가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외교장관에 오른 것도 고맙고 그가 머리를 염색하지 않아서 더 고맙습니다.
유명한 멋쟁이인 제 어머니는 여든여덟이신 지금도 흰 머리칼 한 오라기 없이 염색을 하고 다니시고
딸인 제게도 검은 머리를 '강요'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강요는 다분히 정신적인 것입니다.
눈도 나쁘고 피부도 약한 저이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대충 염색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경화 장관이 염색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자, 어머니는 "어, 저 머리도 괜찮네!"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치 엄마? 엄마, 그러니까 저도 이젠 염색 안 할게요." 라고 했고
어머니는 그냥 웃음으로 찬성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 머리는 바둑이가 되었습니다. 흰색과 갈색이 섞여 얼룩강아지처럼 된 것이지요.
일주일에 한 번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어머니는 마땅찮은 눈으로 제 머리를 관찰하시다 한마디하십니다.
"머리는 계속 그러고 다닐 거야?" 그러면 저는 얼른 대답합니다.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지금 과도기라 그렇지 곧 강경화 장관처럼 될 거예요."
그러면 어머니는 더 이상 힐난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강경화 장관 덕을 본 사람이 여럿일 겁니다.
이 나라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징표 중 하나는 이 나라 사람들이 외모에 부여하는 큰 의미입니다.
태어날 때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 없이 갖게 된 외모,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히 늘어나는 주름과 흰머리가
이 사회에서는 편견과 선입견을 불러 일으킵니다. 얼굴을 고치고 주름을 지우고 흰머리를 염색하는 이유입니다.
가끔 뉴스를 보다 보면 이런 후진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국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도 국회에서 김중로라는 의원이 강경화 장관을 상대로 자신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준 부결을 둘러싸고 비난을 받고 있는 국민의당 의원이라는데,
그 당의 됨됨이와 미래가 빤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래에 그 뉴스가 실린 한국일보 기사를 옮겨둡니다.
‘강경화 은발’ 외모 평가한 장성 출신 의원
12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은발을 두고 여야 의원들간 말다툼이 빚어지면서 한때 소란이 일었다.
정부의 정책을 점검하고 따져 물어야 할 대정부질문자리에서 난데 없는 외모 평가가 튀어 나오자 정치권에선 “북핵 위기가 심각한데 국회의원들의 한심한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발단은 김중로 국민의당 의원이 대정부질문자로 나서 강경화 장관을 단상으로 불러내면서 시작됐다.
강 장관이 목례를 하면서 걸어 나오는 와중에 김 의원은 “시간이 없다”고 재촉을 하더니 “하얀 머리가 멋있다. 여성들의 백색 염색약이 다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저도 좋아한다”며 “근데 외교가 그렇게 잘돼야죠” 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뜬금 없는 발언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발끈했다. “사과하라”, “부적절한 발언이다”라는 항의가 쏟아졌지만 김 의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아니 뭘 사과하란 것인가. 좌중에서 떠들지 마세요”라고 반박했다. 그러더니 “이제 시간이 없다”면서 강 장관에게 질의도 하지 않은 채 “됐습니다. 들어가 주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석에선 “외교부 장관에게 외교를 물어야지, 여성 비하다” 등 항의가 쏟아졌다. 강 장관에게 정책 질문은 하지 않고 머리 스타일만 문제 삼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강 장관은 결국 아무 답변도 하지 못한 채 목례를 하고 들어갔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이 재차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김 의원은 굴하지 않고 “국회에서 소리만 지르면 다냐. 집에 가서 반성하라. 난 사과할 일 없다”고 맞받았다.
야당 의원들도 김 의원에게 가세했다. 자유한국당 의원석에선 “탁현민부터 물러나라 그래”라거나 “역시 군사전문가시네, 명쾌한 질문 같다”, “국민의당이 잘한다”는 등등의 맥락 없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정부의 북핵 위기 대응을 따져 물어야 할 대정부질문 자리에서 전직 육군 장성 출신인 김 의원은 한바탕 소란만 남긴 채 단상을 내려왔다. 거수경례는 빠트리지 않았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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