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웰다잉을 위한 법(2015년 12월 8일)

divicom 2015. 12. 8. 21:32

친구의 시어머님이 돌아가시어 영안실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가기 직전엔 아흔한 살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난 9월에 아버지와 사별하고, 주변의 어르신들이 앞다투어 세상을 떠나시는 것을 보며 잘 죽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거듭 느낍니다.


잘 죽으려면 무엇보다 잘 살아야 하지만, '잘 산다'는 말 속에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들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살아 있을 때, 의식이 명료할 때, 자신이 어떤 죽음을 원하는지, 그렇게 죽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준비에는 자신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 머물 거나,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자신이 어떤 치료나 대우를 받기 원하는지를 주변에 미리 알려두는 것도 포함됩니다. 살아날 가능성이 전무한 상태에서, 실험실의 동물과 같은 처지가 되어 의료기구나 약품의 도움으로 연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족에게 알려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마침 그런 경우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이 국회 소위원회를 통과했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연합뉴스 서한기 기자의 관련 기사를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이 기사는 요즘 보기 드물게 잘 쓰인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기사 원문과 관련 사진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08/0200000000AKR20151208193300017.HTML?input=1179m


웰다잉(Well-Dying) 향한 큰 걸음…입법 첫관문 통과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길 열릴듯…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 통과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더는 나을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결정으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관련법이 입법의 첫 관문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는 생명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근거해 웰다잉(Well-Dying)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게 됐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9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법에 대한 입법작업을 마무리하고 국회 법사위로 넘길 예정이다.


이 법은 또 말기암환자에게만 적용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질환 등 다른 말기질환에도 확대 적용하도록 했다. 특히 이 법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대상 환자를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임종(臨終) 단계에 접어든 임종기(dying process) 환자로 정했다. 이런 의학적 상태는 의사 2인 이상의 판단을 거치도록 했다.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임종기 환자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범주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먼저 의식이 살아 있을 때 환자 자신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한 경우다. 환자 자신의 뜻에 따라 담당 의사와 함깨 연명의료계획서(POLST; Physician Orders for Life-Sustaining Treatment)'나 사전의료의향서(AD; Advanced Directives를 작성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방식이다.


다음은 임종기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다. 이럴 때는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했다.

미리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에서 연명의료 중단의 뜻을 담당의사 2명이 확인하거나 사전의료의향서가 없을 때는 환자 가족 2명 이상이 일치해서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고 진술하고 의사 2명이 이를 확인할 때도 환자의 의사로 추정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는 임종기 환자가 연명의료에 대해 어떤 의사를 가졌는지 추정할 수조차 없을 때다.

이럴 때도 미성년자는 법정 대리인인 친권자가 미성년 환자를 대리해서 연명의료 중단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성인은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하고 의료인 2인이 동의하면 환자를 대신해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했다.

법정 대리인 등 가족이 없을 때는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임종기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할 수 있게 했다.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긴 했지만 대리 결정권을 인정했다.


이에 앞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2013년 7월 31일 '무의미한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확정해 복지부에 입법화를 권고했다. 생명윤리위는 이 권고안에서 ▲ 환자가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POLST)에 따라 특수 연명치료 중단 여부 결정 ▲ 환자 일기장이나 가족의 증언에 따른 '추정 의사' 인정 ▲ 가족 또는 후견인의 대리 결정 등을 연명치료 중단 법률안에 담도록 정부에 권고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대다수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 의식불명이나 살기 어려운데도 살리려고 의료행위를 하는 연명치료에 대해 65세 이상 노인 3.9%만이 찬성했다. 조사대상 88.9%에 이르는 대부분 노인은 성별과 지역(도시-농촌), 연령, 배우자 유무, 가구형태(노인독거가구, 노인부부가구, 자녀동거가구), 교육수준, 취업상태, 가구소득 등 모든 특성에 관계없이 연명치료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노인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다가 숨지는 경우가 많았다. 건강보험공단 부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의 사망 전 급여이용 현황' 보고서를 보면, 노인장기요양 등급 인정을 받고 요양 중 숨진 10명 중 3명꼴로 숨지기 전 한 달 사이에 연명치료를 받았다.


이들은 사망한 달에 가까워질수록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했고, 의료비 지출규모도 사망시점에 다가갈수록 더 커졌다.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사망의 40.9%를 차지하는 장기요양 노인이 죽음을 맞는 현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