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민주주의와 비례대표제(2015년 10월 27일)

divicom 2015. 10. 27. 08:27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비례대표제도의 개선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비례대표제는, 간단히

말하면, 내가 투표한 후보자가 당선되지 않아도 내 표가 죽지 않고 그 후보자의 당을 지지한 표로 계산되어

정치현장에 반영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정의당 후보에게 투표했는데 그 후보가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 후보에게 패하는 경우, 정의당 후보에게 던졌던 한 표가 정의당을 지지한 표로 계산되어 정의당의 비례대표가 국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례대표제는 결함 많은 민주주의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오늘 아침 자유칼럼에서 보내준 글을 읽고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를 거물 정치인으로 키운 게 비례대표제도임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해주신 이성낙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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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총리를 배출한 독일 ‘비례대표제도’

2015.10.27


미국이나 유럽에서 TV 화면을 보면 예능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앵커들이 진행을 맡습니다. 뉴스 시간 후 일기예보를 알리는 기상예보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TV 화면에 등장하는 방송인에 비하면 나이도 훨씬 많고 외모가 빼어나지도 않으며 패션 감각도 떨어지지만, 담당 방송의 전문성이 자연스레 전해져 시청자에게 편안함을 안겨줍니다. 특히 허리둘레가 만만치 않았던 한 여성 기상예보관이 인상 깊게 느껴진 것은 국내 방송의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공영 TV 방송에서 품위 있는 아나운서로 잘나가던 방송인 한 명이 생각나 왜 근래 얼굴을 볼 수 없느냐고 한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돌아온 답은 “나이 들면 TV 방송에서 얼굴과 몸매가 보이지 않는 라디오 방송으로 ‘전출’된다”는 것입니다. 공영 방송사의 참으로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으며, 어이없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경륜이 묻어나는 안정된 진행과 푸근함보다는 젊고 동적인 ‘싱싱해서 설익은’ 아나운서들이 우리 TV 화면을 장악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대체로 우리 사회는 젊음이 주도하는 다이내믹한 사회임이 틀림없습니다. 역동적이어서 긍정적인 점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미완의 설익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균형 감각을 잃은 편향적 사회 흐름이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예부터 원로 중시 풍토가 비교적 강했는데, 어쩌다 원로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다 떠오른 게 국내 정치판입니다.

선거 때면 ‘물갈이’라는 구호가 난무하면서 다선 의원은 그만두라는 분위기에 원로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추풍낙엽처럼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곤 합니다. 원로 정치인이 젊은 후배 정치인에게 밀려나는 덧없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민망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당(黨) 차원에서, 당 대표급 원로가 연고가 없는 선거구에 ‘전략 공천’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 당의 후보와 닭싸움이라도 시키듯 몰아붙이는 형국입니다. 결국 두 원로 후보 중 한 명은 정치 무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원로 소모 현상의 한 본보기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이렇듯 정치판이 ‘원로 경시’, ‘원로 죽이기’에 앞장서면서 낯 뜨거운 설익은 사회를 조성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는 사실은 정말 심각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경로사상을 크게 부르짖는 우리 사회보다 서구 사회가 오히려 원로에 대한 배려가 더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1970년대 독일에서 ‘비례대표리스트(Die Landesliste)’라는 사회 용어를 처음 들었습니다. 어느 한 주(州) 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주지사가 자기 지역구에서 분명 낙선을 했는데,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주지사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비례대표제도는 국회의원 선거(Die Bundestagswahl)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이걸 보며 필자는 마치 정시에서 낙방하고 재시험에 합격한 응시생이 전체 수석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은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한 지인이 원로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보장하면서 경륜을 계속 쌓아가게 하는 제도가 바로 비례대표제도의 참뜻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黨 대표급 원로가 출마하는 선거구의 경우 다른 당에서는 신인을 내세워 거물급 정치인과 경선하며 경쟁력을 키운다고 덧붙였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왠지 설득력 있고 훈훈함이 묻어나는 시스템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비례대표제도의 역동성을 보았습니다. 즉 세기의 가장 역동적 정치 이슈인 ‘독일 통일’이란 대업을 이끌어낸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 1982~1998 총리 재임)총리가 지역구 만하임(Mannheim)에서 낙선했으면서도 자기 기독민주당(CDU)의 비례대표리스트로 계속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헬무트 콜 총리는 정치 시스템이 지키고 보호하며 성장시킨 인물입니다. 참으로 감동 스토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시스템의 순기능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원로를 경시하고 원로가 없는 국내 정치 무대를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